세계사 캐스터/ 로라 리 지음/ 박지숙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펴냄
폭염을 예고하는 장맛비가 시작됐다.
한 달 남짓 동안 생활패턴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야외활동은 줄어들고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각종 소비형태도 달라질 것이다. 장마가 개인의 생활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영향을 주는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바람은 국가나 문화를 형성하는데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흐린 하늘은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에 영향을 미친다. 비는 사람들의 기분을 조절하고 정치와 질병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는 역사까지도 바꾸어놓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날씨나 기후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역사를 바꾼다는 주장은 좀 과장됐다는 생각이 든다면, 폭우가 미국 대통령을 바꿔놓았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질 것이다.
1948년 미국. 공화당 후보인 토머스 듀이와 민주당 후보 해리 트루먼이 대선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투표일 전날 언론은 듀이의 당선을 예상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앞다투어 내보냈다. 성급했던 '시카고 트리뷴'은 '듀이가 트루먼을 이기다.'라는 기사로 1면 머리를 장식했다. 그러나 최종 개표 결과, 승리의 여신은 트루먼의 손을 들어주었다.
여론조사 잘못이 아니었다. 당시 듀이와 트루먼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투표율이 당락에 큰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투표당일 공화당 우세지역인 일리노이 주와 캘리포니아 주 북부 지역에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투표율이 하락했고, 이로 인해 모든 예상을 뒤엎고 트루먼이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날씨가 바꿔놓은 역사적 순간들은 이밖에도 많다.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우습게 여기다 세계 정복의 야망을 접어야 했던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그 한 예다. 영하 40℃를 밑도는 혹한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러시아는 불어나 독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러시아에는 믿을 만한 장군이 둘 있는데, 바로 1월 장군과 2월 장군이다."라고 말했다.
날씨에 관한 놀랍고도 흥미로운 44편의 에피소드는 정치사와 전쟁사뿐만 아니라 예술사까지 넘나들며 다채롭게 펼쳐진다.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명작 '절규'가 화산폭발에 의해 탄생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부터 1378년 콘클라베(가톨릭 교회에서 새 교황을 뽑기 위해 행해지는 선거)가 열리는 대성당에 내리친 번개로 인해 벌어진 가짜 교황 공방전, 빙하기가 빚은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 소빙하기의 기상이변을 마법이라 여긴 사람들에 의해 자행된 마녀사냥, 오로라 연구를 위해 쏘아올린 로켓이 촉발한 제3차 세계대전 위기…….
날씨의 영향이 큰 만큼 날씨를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도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 4월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는 2008년 하계올림픽 기간 중 비가 올 확률이 50%라는 기상예보가 나오자 맑은 하늘을 만들기 위해 인공강우로 날씨를 조절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상학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미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했던 방법이기 때문이다. 1967년 미국은 북베트남의 군수품 보급로인 호치민 길을 파괴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별 효과가 없자 우기를 연장시키기 위한 기상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뽀빠이 작전'으로 불린 이 프로젝트는 요오드화은을 구름 속에 뿌려 강우량을 30%나 증가시켰다.
인류는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끊임없이 자연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왔다. 목초지의 방목, 초원지대 경작, 거대한 도로포장 등은 새로운 기상현상을 야기한다. 최근 과학자들은 9·11테러로 쌍둥이 빌딩이 사라지면서 뉴욕 맨해튼 일대의 번개 양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자연의 흐름을 무시한 채 인간의 이익만을 위해 행했던 많은 일들이 뜻밖의 결과로 인간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한반도 대운하'를 포함해 올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해 쏟아질 각종 거대 개발공약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를 이 책은 재미있는 날씨 이야기를 통해 제기한다. 318쪽, 1만 2천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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