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억 재력가의 데릴사위가 되느니 처가살이를 택하겠다.'
거액 재력가가 공개적으로 데릴사위를 모집하자 결혼적령기의 남성들은 '돈에 팔려가는 것 같다.'거나 결혼정보회사의 상업술에 인륜대사인 결혼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데릴사위'는 우리 주변의 결혼형태에서 거의 보기 드물다. 대신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한다.'는 옛말이 더이상 쓸모없어질 정도로 처가살이하는 사람들이 흔해졌다. 친가보다는 처가가 더 가까워졌다. 사위가 더이상 '백년손님'이 아닌 시대다. 사위를 아들처럼,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는 것이 요즘의 신가족관계다.
맞벌이를 하는 이호준(35) 씨는 처갓집과 같은 아파트단지에 산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앞동에 사는 장모가 새벽마다 와서 두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가서 봐준다. '뒷간과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는 옛말은 요즘 세상에서는 이미 용도폐기됐다. 오히려 '처갓집은 가까이 있을수록 좋고 아예 처가살이하는 것이 최고'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세상이다. 맞벌이부부가 늘어나면서 시어머니보다는 친정어머니에게 육아문제를 의존하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처갓집과 가까운 곳에서 사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재테크를 이유로 신혼초부터 아예 처갓집에 들어가서 함께 사는 부부도 적지않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조영환(32·대구시 남구 대명동) 씨는 결혼전에 마련한 아파트를 전세주고 처갓집에 들어가서 함께 살고 있다. 외동딸인 아내가 친정집 가까운 곳으로 가서 살자고 했는데 적당한 아파트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장모가 같이 살자고 제의했다. '못난 놈'이라는 주변사람들의 소문이 두려워 조 씨는 처가살이하는 사실조차 알리지않고 집들이도 하지않았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대구사람들은 이처럼 '처가살이'를 숨기려는 경향이 많다. 이현아(33) 씨도 병원에 다니는 남편이 직장때문에 자주 집에 들어오지 못하자, 육아문제 등을 이유로 거처를 친정집으로 옮겼다. 그러나 취재에 나서자 신문에 쓰면 안된다고 난색을 표했다.
이채근(43) 씨는 처가살이는 하지않는다. 그러나 처갓집은 가장 가까운 이웃집이다. 결혼하면서 처가가 있던 대구시 서구 평리동에 전세를 얻었다. 그 후 대구시 달서구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처갓집에서도 같은 아파트를 분양받아 한 동네 이웃으로 10여 년째 살게됐다. 그는 집안에 대소사가 있거나 아이들 육아문제 등에서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고 '처가이웃'을 자랑한다.
서울 등 다른 지역사람들에게 처가살이는 흠이긴커녕 당당하다. 고향이 서울인 황상현(37) 씨는 결혼후 대구에서 근무하게 되자 2년동안 처가살이를 자처했다. 그는 "처갓집이 대구인 탓에 굳이 따로 집을 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장모님이 잘 보살펴줘서 편했다."고 말했다. 사위도 '백년손님'처럼 어려웠지만 이제는 친아들처럼 여겨진다.
이처럼 처가살이가 흔해진 것은 아들이 부모님을 모셔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옅어진 반면, '딸자식도 자식'이라며 딸이 부모님을 모시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고 육아문제 등이 생겼을 때 시댁보다는 친정쪽이 아무래도 더 편하다는 의식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시어머니와 멀어지거나 시댁과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는 없다.
호주제가 폐지되는 등의 가족법개정도 처가와의 거리를 가깝게 하고 있다. 하긴 요즘에는 친가와 처가, 양가 부모님을 똑같이 모시려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가족 형태가 핵가족화되면서 딸밖에 없는 경우, 처가에 들어가서 장인, 장모와 함께 사는 것도 자연스럽다. 홀로 된 장인이나 장모를 모시고 사는 변형된 '처가살이'도 많아졌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커플매니저 양소미 씨는 "다른 지역은 몰라도 대구에서는 공개적으로 데릴사위를 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도 "처가살이는 이제 대구에서도 본인들의 사정에 따라 별로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신혼부부의 동거형태가 됐다."고 말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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