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일제의 힘들고 환란 많았던 시절 태어나 곱디고운 꽃다운 젊은 나이에 6·25사변을 겪으시고 26세에 연년생 남매 넷과 함께 홀로되신 어머니. 그 누구보다 역사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들게 가시밭길 세월을 헤치며 살아오신 장한 어머니는 84년이란 한 세기에 가까운 역사의 산증인이시다. 그 어머니의 얼굴은 이제 인고의 주름이 덕지덕지 쌓여 번데기 같은 애련한 모습이다. 이젠 허리, 무릎, 관절, 고혈압, 당뇨병 등이 아주 친한 친구인양 찾아와 어머니를 괴롭힌다.
맏딸인 나는 출가외인이지만 어머니 시중 든다고 들러서는 오히려 시중을 받고 간다. 그 무겁고 힘든 다리를 끌며 온갖 과일, 고기, 생선을 장만해 놓으시고 당신 자신은 지병으로 못 먹으니 너 안 먹으면 버린다며 어서 빨리 먹어라 재촉하신다.
TV를 끄고 달빛이 창가에 고요히 숨죽일 즈음에 어릴 적 엄마와 같이 살 때처럼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웠다.
"엄마 옛날얘기 또 해줘. 아주 먼 옛날 얘기, 엄마가 엄마의 엄마, 또 그 위의 할머니에게 서 들은 얘기까지…."
"요즘 와서 내 기억들이 자꾸만 희미해지고 멀어져 간다."며 3·1 운동 때 서울 파고다 공원 등 각지에서 부른 만세 이야기며 만주 길림성 교화현 청베이촌에 이주해서 살던 이야기, 일제가 전쟁의 막바지에 전쟁물자 수급에 광분해 착취한 이야기들은 들려주신다.
난 엄마가 치매가 오기 전에, 또 이 땅에서 우리와 영영 이별하기 전에 엄마의 먼 옛날 얘기를 들어야 했다.
"일제 강점하 시절,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이 목숨 부지하려고 고향을 등지고 춥고 낯선 먼 땅에서 이렇게 고생했어. 아니 그건 고생의 시작이었지. 그러니 나라를 사랑하고 잘 지켜야 후손이 다시는 이런 고통을 당치 않지."
난 엄마의 긴 삶의 실타래 속에 녹화되어 감겨진 내가 모르던 시절, 엄마·아빠의 역사를 내 기억 속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엄마 저번에 얘기 하다만 초상난 집 얘기 해줘. 우리와 풍습이 많이 다르다 했잖아."
"곧 새벽 날이 트겠다, 이제 자고 다음날 해줄게."
"그래요 그럼, 엄마 자."
긴긴 세월을 홀로 외롭게 사신데 다 늙어서 더 외로워 보이는 엄마에게 이 못난 중늙은이 딸이라도 억지 어리광을 부려 "어머니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니 너무 외로움 타지 마세요."라는 뜻으로 말도 어릴 때처럼 놓았다. 난 졸립지 않지만, 엄마는 얘기하시기도 숨이 가쁘신 것 같았다.
김송지(대구시 서구 평리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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