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먹거리 문화라는 말이 공공연히 사용된다. 이것은 먹거리 즉, 음식과 문화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먹는 것에도 문화가 있다. 참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겐 조금은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말이 유행하는 것 같다.
과거 대가족 제도에서는 이런 말이 없었다. 왜? 누구나 알고 행하였으니 달리 이런 표현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음식에는 반드시 위·아래가 있고, 음식을 먹을 때는 소리를 내어서 안 되며, 어른 보다 수저를 먼저 놓아서도 안 된다. 그리고 아무리 맛난 반찬이 있어도 어른이 손을 대고 난 후에야, 아이들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아쉽게도 이 모든 것이 핵가족 제도에서는 사라져 버렸다. 자식이 귀여우니까 모든 것이 거꾸로 변해버린 것이다. 음식의 선택권도 자식들에게 있고, 먹는 것도 자식이 우선이다.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음식에 예의와 법도가 있을 턱이 없고, 그저 제 마음대로다.
열 번을 양보해 내 가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한 들 어쩌겠는가? 하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대중음식점이나, 어른들이 계신 자리에서 이런 일이 공공연히 벌어질 때는 참으로 난감하기 이럴 데가 없다. 내 자식 같으면 당장 때려주고 싶지만 남의 자식이니 그럴 수도 없고, 더욱이 어른들조차 똑같은 행동을 하면 울화통마저 치민다.
문화는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리 없이 지킴으로써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부끄럽게도 문화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먹거리 문화, 길거리 문화, 공연장 문화, 공공장소의 문화.... 문화, 문화, 각종 문화의 이름과 구호가 머리를 어지럽힌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지켜지고 있지 않기에 인위적으로라도 만들고자 하는 발버둥인 것이다.
문득 옛날이 그립다. 길을 걷다가 어른들을 만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히 인사를 했고, 버스 안에서 노약자를 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자리를 양보했다. 길거리에서 담배는 삼가했고, 혹여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까봐 사랑하는 남녀라 할지라도 팔짱조차 삼가했다.
물론 이것을 다 지키자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변했고, 어른들은 적당한 선에서 현재를 인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알아서 조심하고, 삼가함으로써 올바른 생활의 문화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공정욱(치과의사·극단 '마카'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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