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e세상] 새로운 패러다임 '집단지성'

사공이 많으면? 목적지에 더 빨리 간다!

초식동물과 물고기 중에는 떼로 몰려다는 종들이 많다. 혼자 떨어져 있으면 포식자들의 눈에 잘 띄어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기에, 무리 속에 묻혀 움직이는 생존 전략을 쓰는 셈이다.

영국의 유전학자 프란시스 골튼(1822~1911)은 시골장터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경험했다. 장터에서 황소 몸무게 알아맞히기 퀴즈 행사가 열렸는데 아무도 맞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퀴즈에 참석한 사람들이 적어낸 무게를 합쳐서 평균치를 산출해 보니 실제 소 몸무게와 일치하는 것이 아닌가.

◆'나'보다 '우리'가 똑똑하다

"사공 많은 배는 산으로 가는 게 아니라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한다."

캐나다의 전략컨설팅업체 CEO인 돈 탭스코트와 그의 동료 앤서니 윌리엄스는 공저사 '위키노믹스'에서 이같이 역설했다. 대중들에 의해 정보와 기술·가치가 공유되는 지식 커뮤니티 시대가 도래하면서 등장한 이른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사회·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놓는다는 것이다.

집단지성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네이버의 '지식iN'을 꼽을 수 있다. 2002년 말에 등장한 지식iN 서비스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누리꾼들의 참여를 결합시키면서 인터넷 지평을 넓혀놨다. 지식iN은 당시 국내 포털 순위 4, 5위에 불과하던 네이버를 국내 포털계의 맹주로 등극시킨 일등공신이다.

지식iN 이용은 생활의 일부가 됐다. 숙제를 하는 초교생, 리포트 쓰는 대학생, 여름휴가 계획 짜는 가장, 쇼핑정보를 구하는 주부도 지식iN에서 질문하고 정보를 얻는다. 네이버 지식iN에는 하루 평균 7만 건의 콘텐츠가 올라온다. 1분에 50개꼴이다.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으로 유명해진 '브릭'(BRIC)도 집단지성의 사례다. 익명의 자연과학 연구자들이 활동하는 브릭은 황 박사의 논문 조작 의혹을 최초로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오마이뉴스'도 집단지성의 한 유형으로 꼽힌다.

◆위키피디아, 브리태니커를 뛰어넘다

해외의 집단지성 사례로는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를 빼놓을 수 없다.

위키피디아는 사용자 참여형의 온라인 백과사전이다. 인터넷 이용자들 누구나 질문하고 답변하며 첨삭해서 정보를 쌓아간다.

2001년 1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이제 전세계 250개 언어로 된 600만여 건의 정보가 축적됐고 한 달에 2억여 명이 접속한다. 정보의 양적인 측면에서 위키피디아는 200년 역사를 가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넘어섰다.

위키피디아는 공동 작업과 정보 공유에 기반을 둔 인터넷 서비스의 강력한 상징이 됐다. 위키피디아 측은 이제 검색 사업 영역을 넘보고 있으며 위키피디아에 실린 콘텐츠를 CD나 책으로 출판하는 오프라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집단지성, 경제를 바꾸다

위키피디아의 원리를 경제적 수익모델로 바꾸려는 시도가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위키노믹스'(Wikinomics)다. 사람들의 집단적 지혜를 이용한 대규모 협업이 경제적 수익 창출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미국의 광산회사인 골드코프는 6천730만 평에 달하는 자사 광산의 지질데이터 등 정보를 지난 2000년 3월 홈페이지에 전격 공개했다. 네티즌을 상대로 상금을 걸고 금광찾기 이벤트도 벌였다. 직원들은 경영진이 미쳤다고 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세계 50여 개국 1천여 명의 네티즌들이 데이터를 분석해 모두 110곳의 금광 후보지를 찾아냈다. 네티즌이 찾아낸 110곳의 후보지 가운데 80%에서 총 220t의 금이 나왔다.

위키노믹스는 국내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한 내비게이션 업체는 사용자들이 도로정보를 수정해 올리는 방식으로 자료를 공유하는 개념의 제품을 내놨다. 렌즈교환식 디지털카메라(DSLR)를 출시한 일본의 한 메이커는 한국 인터넷 동호회에 올라온 사용자들의 리뷰를 신모델 개발 계획이나 애프터 서비스 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사용자들의 리뷰가 전문가 보고서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개인들의 참여가 집단지성의 바탕

이코노믹스(경제학)의 원리가 소유와 권리였다면 위키노믹스를 관통하는 물줄기는 '개방'과 '공유'다.

SK텔레콤 인터넷 미디어센터 윤지영 박사는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가 지난 5월 개최한 학술대회의 기조발제를 통해 "인터넷 시장의 진화는 미디어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집단지성으로 불리는 개인들의 참여가 바탕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키워드

▶ 위키피디아(Wikipedia)

'위키'는 원래 하와이 말로 '빨리빨리'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위키위키'(wikiwiki)에서 유래됐다. '위키'는 다른 사람이 작성한 글을 누구나 수정하거나 첨부할 수 있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여기에 '사전'(encyclopedia)이라는 단어를 합쳐서 위키피디아라는 이름의 온라인 백과사전이 생겨났다. 비영리단체인 위키미디어재단이 운영하며 설립자는 지미 웨일스(Jimmy Wales)이다. 한국어 서비스(http://ko.wikipedia.org)는 2002년 10월부터 시작됐으며 6월 21일 현재 3만 8천여 건의 정보가 올라와 있다.

▶ 위키노믹스(wikinomics)

'위키피디아'(Wikipedia)와 '이코노믹스'(Economics·경제학)를 합성한 신조어다. 인터넷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일컫는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사람들의 집단적 지혜를 이용해 해결하거나 창조적인 성과를 이뤄낸다는 것이 핵심이다.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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