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각사(麟角寺)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장맛비를 가득 안은 검은 구름이 발길을 재촉했지만 초행길은 나그네에게 쉽사리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영천 방향에서 28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화수삼거리, 덕천교를 지나면서 간신히 인각사에 다다를 즈음, 어느 산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을까 막연히 상상했다. 하지만 막상 찾은 인각사는 산속이 아닌 길가에 터를 잡고 있었다. 절이라기보다는 어느 고택 정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깊은 산중의 웅장한 절을 기대했던 나그네에게는 다소 실망감을 주었다.
인각사와 일연(一然·1206~1289) 스님. 기초교육을 받은 독자라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지은 일연 스님은 모두 알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고 자부심을 일깨워준 삼국유사가 인각사에서 집필된 것을 알고 있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인각사는 고려 충렬왕 10년(1284년)에 일연 스님이 중창했고 조선 숙종 25년 당시 의현현감 박성한이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중기까지 총림법회(叢林法會) 등을 자주 열고 승속(僧俗)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고려시대 학자 이색의 목은집에는 당시 인각사는 크고 높은 본당을 중심으로 그 앞에 탑, 좌측에 회랑, 우측에 이선당이 있었고 본당 뒤에는 무무당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극락전, 명부전, 강설루, 신축한 국사전 등 많은 유물이 남아있지 않다. 이 가운데 국사전 안에 모셔진 일연 스님 영정은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기자를 맞아준 옥봉희 인각사 사무장은 "현재의 상인 주지 스님이 부임하기 전까지 인각사는 제대로 된 사찰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인각사는 오가던 스님들에게 하루, 이틀 잠자리만을 제공했을 뿐 관리가 전혀 안 됐다고 했다.
하지만 경상북도와 군위군, 사찰 등이 힘을 합쳐 체계적인 발굴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경내에는 지난 20일 문을 연 삼국유사특별전시실이 눈에 띄었다. 오는 8월 16일부터 3일간 경내에서 열리는 제7회 일연삼국유사문화제 행사의 일환으로 문을 연 전시실에는 삼국유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우리 역사를 다양한 그림으로 그려놨다.
경산에서 태어난 일연 스님은 스물두 살에 승과에 급제한 뒤 10년 뒤 대선사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1277년 일연 스님은 나라의 최고 스님인 국존이 되어 충렬왕에게 불교를 가르쳤으며 1283년 병든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인각사에 내려왔다고 한다. 그때 나이가 78세.
그는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고 84세의 어느 날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일연 스님은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비롯한 여러 권의 불교서적을 저술했다고 전해진다.
경내에 있는 일연 스님을 기린 '보각국사비'가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 21년(1295년)에 당대의 문장가 민지(閔漬)가 지은 문장을 4천50자의 왕희지체로 집자해 만든 보각국사비는 당시 2m 높이였지만 현재는 70cm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글씨가 희미해 알아보기 힘들다. 풍파에 찌든 탓도 있지만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이 비를 갈아 마시면 급제한다는 속설 때문에 더욱 닳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재야 서지학자 박영돈(71) 씨가 수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자료를 수집, 새로 만들었다. 이제야 후손들이 정신을 차리는가 싶다.
인각사뿐만 아니라 군위군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불교문화가 있다. 인각사에서 30여 분 차를 타고 부계면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삼존석굴이 나온다.
경주 석굴암보다 건립 연대가 1세기 이상 앞서는 삼존석굴은 거대한 자연암벽에 지상 20m 높이에 폭 4.25m, 길이 4.3m의 자연굴 속에 본존불과 관음, 대세지 보살이 안치돼 있다. 건립된 연도로 보면 제2석굴암이란 말이 다소 어색하다. 이곳은 삼존석굴로도 유명하지만 주변의 경치가 나그네의 감탄을 자아낸다. 삼존석굴 뒤로 병풍처럼 깎아지른 바위며 짙푸른 녹음은 나그네에게 한껏 여유로움을 준다.
1985년 전까지는 삼존석굴만 달랑 있고 주변에는 집도 절도 없는 황무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비로전과 선원, 교육원 등이 있고 주변에는 식당 등 상권까지 형성돼 있어 주말 드라이브 코스로는 제격이다.
군위·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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