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월드컵에서 예선 탈락과 16강 진출을 결정하는 운명의 일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 팀이 1대 0으로 이기고 있다. 반드시 이겨야 되는 경기이다. 종료 시간은 5분 남았다. 숨 막히는 접전이 벌어지고 선수들은 기진맥진한 상태이다. 관객들도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관전한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보다 더 힘이 든다. 승자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른다.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도 숨을 죽이고 화면과 시계를 번갈아가며 본다. 이런 순간 사람들의 태도와 표정은 정말 천태만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거나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응원을 한다. 어떤 사람은 경기를 계속 지켜보지 못하고 필요하지도 않은데 화장실에 가거나 이미 읽은 신문을 다시 읽기도 한다. 심지어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사람도 있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기다림이란 아름답고도 슬픈 것이며, 때로는 우리의 가슴을 터지게 하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기다림이란 희망과 절망, 권태와 기대가 뒤섞인 하나의 부조리이다.
기말시험 기간 동안 부모의 태도도 축구 시합을 보는 관중과 비슷하다. 선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하며 온갖 환호와 야유를 보내는 부모가 많다. 관중의 응원 방식은 선수의 기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관중 없는 경기는 생각할 수 없다. 관중이 없다면 최선을 다하여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관심과 응원이 지나칠 때 선수는 부담을 가지게 되고 오히려 몸이 경직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자녀의 시험을 지켜보는 부모의 역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관중이 선수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하듯이 부모도 자녀를 압박하여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 관중이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경기는 선수가 한다. 선수가 실수를 했다고 관중이 난동을 부려서는 안 된다. 실수를 하고 넘어질 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격려해 줄 때 선수는 부상의 고통조차 잊고 투혼을 불사른다. 시험을 치는 학생도 선수와 꼭 같다.
많은 가정에서 시험을 치는 학생보다 부모가 더 긴장하고 예민해진다. 부모가 아무리 용을 써도 시험은 학생이 친다. 부모의 간섭이 심하면 학생은 오히려 극도로 소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실수에 관대하고 늘 낙관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부모 밑에서 자신감이 넘치고 학업 성취도가 높은 자녀가 나온다. 시험기간 동안 손에 땀이 나서 지켜보기가 어렵다면 동네를 한 바퀴 돌며 긴장과 초조함을 달래는 관중의 자세를 취해보자. 자녀 곁에서 끝없이 잔소리를 하기보다는 가까운 야산에라도 오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것이 부모, 자식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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