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기설기 엮인 지붕 사이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경미(가명·39) 씨는 부랴부랴 비닐을 가져와 지붕 사이에 난 구멍을 막았다. 서늘하고 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는 게 엉망이죠."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서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자식 둘을 잃고 피해온 한 여인의 절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과 팔 곳곳엔 상처 흔적이 뚜렷했다. "혁대로 맞은 흔적인데 쉽게 없어지지 않네요." 눈동자에 물기가 도는 순간 그녀는 여섯 살 난 둘째 딸 영선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아빠란 말만 들으면 오줌을 지린다는 영선이를 품에 안으며 그녀는 고단했던 삶의 실타래를 풀어냈다.
2년 전 추운 겨울이었어요. 첫째 딸 지선(10)이의 찢어진 머리에서 흐른 피가 금세 굳을 정도로 시린 날이었죠. 남편(43)은 그날도 어김없이 술에 취해 있었지요. 도박판에서 돈을 잃었는지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기 시작하더군요. 식탁 다리를 빼든 남편의 눈빛엔 광기가 서려있었지요. 어떡해서든 막아야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90㎏이 넘는 남편의 뭇매를 막아내기란 불가능했지요. 아이들은 눈물 범벅이 된 채로 "아빠 잘못했어요." 라며 남편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남편의 손엔 혁대가 들려있더군요.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요. 아이들을 감싸고 이를 악문 채 온몸으로 매질을 참아냈지요. 방에서 잠자던 막내 아들(10개월)의 울음소리가 들리더군요.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제서야 경찰 도움 없이는 남편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지요. 맨발로 뛰쳐나와 그 길로 경찰서로 향했지요. 하지만 아이들을 데려올 수가 없었습니다.
한 달 후, 쉼터의 도움으로 아이를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집안 어디에서도 막내 아들을 찾을 수가 없었지요. 순간 옆에 있던 지선이가 울음을 터뜨리더군요. 엄마 없이 힘들었을 아이를 제 품 가득 안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아이는 그날따라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지요. 아이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더군요. 결국 지선이는 그날의 충격을 털어놓았습니다 "영민이가 숨을 안 쉬었어. 엄마, 나 너무 무서웠어." 그날 알았습니다. 지선이가 영민이를 홀로 돌보다 떨어뜨렸다는 것을, 그리고 일주일 뒤 영민이가 뇌출혈로 죽었다는 사실을···.
지선이 앞에서 울 수조차 없었습니다. "괜찮아, 지선아. 괜찮아. 다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미안해." 그날로 짐을 싸서 딸 아이 둘을 데리고 고향인 대구로 올라왔지요. 그날 밤 남편의 뭇매로 사산했던 첫째 아이와 죽음조차 알지 못했던 영민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이 둘을 지켜내지 못한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해 달라고, 너무나 미안하다고 미친 듯이 빌고 또 빌었지요.
26일 오후 대구 중구 남산동 이 씨의 허름한 집. 이 씨는 그 후 아이를 잃은 후유증으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딸 둘 역시 정신이상증세를 보여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지선이는 최근 신장염 진단까지 받았다. 소변에 혈류와 단백류가 나와 정밀진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10평 남짓한 집조차 방세 60만 원이 밀려 있었지만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다 좋아질 것이라고 믿어요. 이젠 회복하는 일만 남았잖아요." 하지만 그녀에겐 아이의 병원비도, 비 새는 집의 방값도 낼 여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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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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