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시평] 인권위 대구사무소 개소에 즈음하여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지역사무소가 7월 2일 문을 연다. 지난 2005년에 설립된 부산과 광주에 이어 세 번째 지역사무소가 된다.

올해로 출범 6년째를 맞은 국가인권위원회에게 대구지역사무소는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대구지역사무소 개소를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역사회의 인권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게 됐다는 점이다. 또한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대구지역사무소가 탄생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역의 인권현안을 적극적으로 풀어가기 위한 인권시민단체와 언론기관의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대구·경북지역 주민들의 뜨거운 관심이 없었더라면 대구사무소는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는 우리 역사에 의미 깊은 국채보상공원 인근에 자리 잡았다. 100년 전 나라가 존립 위기에 처했을 때, '대구 대동광문회'라는 이름을 단 선언문이 순식간에 이 땅의 민심을 사로잡았다. 전 국민이 65원씩 모아 외채를 모두 갚고 자주적인 국가를 만들자는 외침이 후일 독립운동과 국난극복의 원동력이 된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서 대구사무소는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2001년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동안 사회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에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흘러 넘겼던 여러 문제들이 '인권'의 관점에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경찰, 검찰, 교도소, 군대, 학교 등의 잘못된 관행이 하나 둘씩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인권위원회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면서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다양한 영역의 차별행위들도 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시정됐다.

물론 인권위의 결정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공무집행이 어려워졌다는 공직자도 있었고, 차별의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한 기업가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한 수용률이 80%를 넘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비교해볼 때 우리 사회의 인권수준이 향상된 것은 분명하다. 불과 반세기 전 전쟁의 폐허에서 신음하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UN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인권기구의 주요 인물들이 배출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눈부신 성장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인권에는 마침표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개선해야 할 측면도 적지 않다.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관련해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의 날선 비판에 직면해 있고, 미국 국무부의 인권보고서에 '성매매 천국'으로 기술돼 있으며, 2006년 공개된 남녀격차지수(GGI)에서는 115개국 중 92위에 머물러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경제발전의 수준이 선진국을 결정하는 척도였다면, 미래사회의 선진국을 가늠하는 척도는 인권 수준이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노력은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진정 세계 속에서 존경받는 '품격'을 갖추고자 한다면,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인권위원회는 출범 이후 줄곧 대구·경북 주민들의 인권문제에 귀를 기울여왔다. 그 결과 2007년 5월 현재 이 지역에서 접수된 진정사건은 총 3천308건으로 전체의 13.5%에 달하고 있다. 또한 2004년에는 대구 시내에서 인권순회상담을 실시했고, 2005년에는 대표적 한센인 거주지역인 경북 칠곡군을 찾아 역사적 차별 문제에 대한 증언을 청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실태조사를 토대로 정부와 국회에 특별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문제에서 중요한 것이 현장기동성이다. 위원회의 출범 초기, 지리적 여건 때문에 사건현장에 신속히 도착하지 못해 인권침해 여부 등을 가리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 광주에 이어 대구에 지역사무소가 설치됨으로써 인권현안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권문제는 사후구제보다도 사전예방이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구제절차가 훌륭하더라도 예방만큼 완벽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 대구사무소는 유관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인권교육과 홍보활동을 적극 추진할 것이다. 대구·경북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의 경우, 위원회의 권고가 수용되거나 조사 도중에 합의종결 처리된 예가 많아 교육홍보를 본격적으로 실시한다면 좋은 결과가 뒤따를 것으로 기대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뜻있는 사람들의 열정이 빚어낸 대구사무소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구심점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인권위원회는 앞으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할 것이다. 모쪼록 대구사무소가 '세금이 아깝지 않은 국가기관'이 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아낌없는 관심과 격려를 당부드린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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