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라져 가는 것들

산업철도 완공에 힘입어 1953년 사용이 급증한 연탄은 오랜 세월 우리나라 가정의 주 연료였다. 그 후 20여 년 만에 전국 830여만 가구 중 550만 가구가 난방'취사를 전적으로 거기 의존하게 됐을 정도였다. 하지만 연탄은 '19공탄' 단 한 장에서만도 430명이나 숨지게 할 수 있는 양의 일산화탄소(225ℓ)가 배출되는 위험한 물질이기도 했다. 그걸 1년에 60억 개나 쓰다 보니 전국에서 연간 100만 명이 중독돼 3천여 명씩이 목숨을 잃고 40여 만 명이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집집마다 애환이 있고 사람마다 추억을 가진 게 연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연탄마저 우리 대부분의 기억에서 진작에 아득해져버렸다.

만주족은 청나라를 세운 민족이었고, 1911년까지도 중국의 지배 민족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뉴욕타임스 신문이 지난봄 현지를 답사한 결과, 그들이 쓰던 만주어는 오래 전 실용어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고 소멸 단계에 들었더라고 했다. 여전히 스스로를 만주족이라 생각하는 중국인이 1천만 명이나 되는데도 한족 문화에 동화돼 버려 그렇더라는 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종족의 언어가 불과 100년도 안 돼 사멸의 길을 걷다니, 세상 무상을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지난 5일 '최근 25년간 사라진 25가지'를 정리해 보도했다. 다이얼 전화기는 벌써 박물관 신세가 됐고, 자동차 창문 여닫을 때 돌리던 레버 또한 사라진 것 서열 19위에 올랐다. LP음반(5위)은 CD에 밀려 골동가게로 들어갔으며, 가정용 VHS비디오(8위)는 DVD에 의해 내쫓겼다. 대중문화의 상징이던 장발(21위), 특히 한국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소련의 위협(3위), 팝의 황제이던 마이클 잭슨(24위)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보다 특히 더 주목받은 것은 실내흡연의 퇴출이더라고 했다.

소련의 공포가 사라진 것은 잘된 일이고 지독한 연탄가스 공포가 없어진 것은 더 잘된 일일 터이다. 그러나 사라져서는 안 될 것도 있으니,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많은 생물 의 멸종, 앞으로 100년 이내에 발생하리라 전망된 샌프란시스코'베니스'나폴리의 소멸 등등은 분명 재앙이다. USA투데이는 지난 25년간 사라진 25가지 중에 교양(15위)이 포함됐음 또한 특별히 아쉬워했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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