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7 농촌체험] ⑩성주 작촌마을

샛노란 참외 따는 재미에 일어설 줄 모르고…

▲ (사진 위)지난 23, 24일 성주 월항면 인촌리 작촌녹색농촌체험마을에서 열린 농촌체험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참외를 직접 수확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어린이들이 마을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떡메를 쳐보고 있다.
▲ (사진 위)지난 23, 24일 성주 월항면 인촌리 작촌녹색농촌체험마을에서 열린 농촌체험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참외를 직접 수확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어린이들이 마을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떡메를 쳐보고 있다.

하늘이 원망스러워진다. 밤 늦게나 비가 오리라는 일기예보만 믿었던 게 잘못이다. 진즉 장마는 나이 많은 아내의 잔소리와 같다고 하지 않았나. 그친 듯 안 그친 듯….

후두두 후두두 쏟아지는 빗소리에 콩닥콩닥 초조해지는 마음을 꼭꼭 숨기고 성주 참외생태학습원에서 비를 피한다. 지난해 문을 연 이곳은 그야말로 참외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박물관'. 참외재배 농기구, 참외로 만든 음식, 참외 묘포장 등 없는 게 없다. 국내 최고의 참외고장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색깔이 맑은 노란색을 띠고 골이 옴폭옴폭 깊게 패어있는 게 좋은 참외입니다. 하지만 좋은 참외를 고르는 것보다 잘 보관하는 게 더 중요해요. 신문지로 싸서 그늘진 곳에 둬야 신선한 참외를 오랫동안 드실 수 있습니다."

참외생태학습원 정성윤(41) 씨의 설명에 모두들 마음은 벌써 참외밭으로 향한다.

선석산 아래 자리 잡은 작촌마을에서는 10여 명의 마을 어르신들이 체험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장맛비 속을 뚫고 달려온 도시아이들이 마치 제 집 찾아온 손자인 양 넉넉한 웃음으로 반긴다.

"오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 마을은 까치가 많아서 작촌이라 부릅니다. 산 좋고 물 좋아 참외 맛 하나는 전국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첫 체험은 두부 만들기. 맷돌을 돌리고 주걱으로 젓는 고사리손들은 신기한 놀잇감을 발견한 듯하다.

"야, 너무 맛있겠다. 언제 다 만들어져요?" "조금만 기다리렴. 저녁밥상에 차려줄게." 저녁식사 시간이 멀게만 느껴진다.

혹시 내일은 비가 더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잠시 비가 잦아든 틈을 타 선석산 태봉을 오른다. 세종대왕자 태실(사적 444호)에는 세종대왕의 아들 18명과 손자 단종을 포함한 19기의 태(胎)가 묻혀 있다.

"세종대왕자 태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 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예입니다. 멀리 한양에서 임금님이 올 정도였으니 얼마나 좋은 명당이겠습니까?" 퇴근까지 미뤄가며 안내에 열을 올리는 배재일 문화유산해설사의 구수한 입담에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운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난 뒤 마당에선 장작불이 타오른다. "빗 속에 웬 캠프파이어?" 하며 의아해하던 체험가족들도 하늘 높이 올라가는 불꽃에 이끌려 하나 둘 우산을 쓴 채 모여든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이어지는 아이들의 노래는 귀를 즐겁게 하고 동동주 한 잔은 입을 즐겁게 한다.

'그래, 장마 뒤에 외 자라듯 무럭무럭 자라렴.' 개구쟁이들을 바라보는 엄마아빠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다행이다. 간밤 잠을 설치게 하던 빗소리는 사라지고 언뜻언뜻 햇살이 비친다. 세종대왕의 은덕일까? 마음이 여유로워지자 참외상자로 만든 어설픈 밥상에도 밥맛만큼은 꿀맛이다.

참외밭에서는 모두들 보물찾기에 열중이다. 파란 이파리 사이사이 숨어있는 샛노란 참외들이 행여 다칠세라 조심조심 따낸다. 하지만 견물생심 아니런가. 욕심들이 끝이 없다. 그만 가자는 밭주인의 호통(?)에도 일어설 줄 모른다. "이렇게 좋은 참외를 어디 가서 사겠어요? 조금만 더 딸게요."

모내기는 도시아이들에게 최고의 체험이다. 주저주저하던 아이들은 엄마아빠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뒤에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50평 남짓한 논이 금세 새파란 옷으로 갈아입는다.

"엄마, 모내기 할 논 더 없어요?" 6월의 싱그러움이 온 들판에 가득하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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