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야당 유력 경선후보간의 다툼

한나라당 유력 대선후보간의 다툼이 날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유력 경선후보들은 상대에게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약점을 끊임없이 파헤치고 있고 쟁점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한술 더 떠 대통령을 중심으로 청와대까지 이 다툼에 끼어들어 재판관인 선거관리위원회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를 시발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국가정체성 등의 쟁점과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다시 대운하 평가보고서의 변조논란 등을 대하는 국민의 마음은 혼란스럽기만 할 것 같다. 반면 정치인들은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자유롭기는커녕 본질적으로 이를 즐기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국민의 마음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다.

현재 당사자들은 개인 및 당파의 이익과 손실을 계산하면서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느라 바쁠 것이다. 공격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과 공격이 상대방에게 가능한 한 최대의 위해를 가해 반사이익을 얻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상대방 공격이 허구라는 것을 방증함으로써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논의를 개인에서 조직으로 발전시키면 야당의 입장은 미리 매를 맞음으로써 내성이 생길 수 있으며,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밝혀서 본선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 와중에 국민의 관심을 얻어 흥행의 성공이라는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미리 유력후보들을 낙마시키거나 흠집을 잔뜩 내서 본선을 지금보다 쉬운 싸움으로 몰고 가고 싶을 것이다.

'정치는 출혈 없는 전쟁'이라고 말한 마오쩌둥의 말이나 '전쟁보다 위험한 게 정치'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생각해보면, 현재 청와대까지 개입하고 나선 야당의 유력 경선후보간 다툼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나라의 발전과 내일을 잠시라도 고민해보면 지금의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라도 국가의 이익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한국대통령학연구소는 개인적 차원에서 대통령이 지녀야 할 구체적 자질로 비전제시 능력, 인사관리 능력, 위기관리 능력, 민주적 정책 능력 및 실행 능력, 도덕성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들 능력들은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중요한 것이나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전제시 능력이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제시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비전제시 능력이 다른 어느 능력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국민통합과 직결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라를 관리하고 싶으면 우선 나라 전 분야에 대한 청사진을 밝고 분명하게 그려내야 한다.

개인적 차원의 자질, 특히 도덕성을 중심으로 개인을 흠집 내는 것은 과거에 대한 회고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 봤을 때 문제가 있으면 결격사유가 되고 앞으로도 과오를 되풀이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흠집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겪은 지난 두 번의 대선패배는 바로 회고적 판단과 직결되고 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후보의 병역비리는 물론 산업화 시절부터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에 대한 반발심에 기초한 회고적 판단들이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좌우하는 중요 변수로 작용했다.

회고적 판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전망적 판단이다. 미래를 바르게 끌고나갈 수 있느냐를 판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회고적 판단은 전망적 판단의 보조적 역할을 해야만 한다. 비전제시 능력은 전망적 판단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하다.

문제는 과거는 사실이기에 존재하고 있지만 미래는 불확실하기에 불투명하다는 점에 있다. 흔히 선거공약을 전망적 판단의 근거로 들이대고 있지만 장밋빛 미래가 전망이 아니다. 우리 정치는 상대방을 흠집 내고 낙마시켜 상대적인 반사이익을 향유하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회고를 전망으로 연결시키는 데는 취약하다. 개인이나 조직이 작은 상처나 흠집에 견뎌내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전투구의 양상까지 전개된다.

지금보다 진화한 다툼 시스템이 만들어져 전망과 회고가 일관성 있게 연결되어야 한다. 전망이 회고에서 나올 수 있을 때 후보가 겪어낸 삶의 역정을 짚어보는 회고가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자질 및 능력이 있다는 전망과 직결될 수 있다. 그래야만 도스토예프스키가 정의한 것처럼 '정치란 조국에 대한 사랑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정치도 가능해진다.

임동욱(충주대 행정학부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