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 시조산책-서우승 作 '빚 갚기'

여기

시공도 넘은

보답인 줄 아는가

꼬꼬할배적 善業이 벼랑 중턱에 자라나

실족을

간신히 받쳐

목숨껏 비명 지르게 한다.

몰래 저지른 일도

몰래 자라기 마련

오뉴월 서릿발 치듯 감쪽같이 환생한댔지

선뵐 날

딸애 이마에

난데없는 반점 두엇.

알고 보면 제 몫의 빚

모두들 지고 왔으리

연분도 빚일밖에 묵묵히 갚아야 할 빚

어디서

본 듯한 얼굴

참 많은 세상 아닌가.

삼계육도(三界六途), 그 미혹의 세계에서 생사를 되풀이함은 애당초 업장인 것. 뜻하지 않은 삶의 경험들을 풀어낸 몇 개의 삽화. 그것을 빚 갚기로 해석하는 시각은 불교의 인과율에 닿아 있습니다.

'꼬꼬할배적 선업(善業)'이 '벼랑 중턱'에서 '실족을/간신히 받쳐' 주고, '선뵐 날/딸애 이마에/난데없는 반점'은 전생에 '몰래 저지른 일'이 '감쪽같이 환생'한 것. 세상 모든 일은 이렇듯 이승의 인연에 그치지 않고 전·후생의 과보로 연결됩니다. 어차피 '연분도 빚'이어니, 한뉘를 산다 함은 저마다 지고 온 '제 몫의 빚'을 갚는 일과 다를 바 없지요.

인식의 뒤집기는 이미 낡고 오랜 소재를 전혀 새로운 관심사로 바꾸어 놓습니다. 생각의 곁가지들을 쳐내되 일관된 주제를 놓치지 않는, 그러면서 의외의 공간으로 표현 영역을 넓혀 가는 사유의 분방함이 거기에 있습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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