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는 그의 병서에서 '병법은 곧 기만전술'이라고 설파했다. 인간 존재의 극한이 드러나는 전쟁에서 정도니 신사도니 하는 규범들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러나 인간 역사는 항상 예외를 만든다. 十八史略(십팔사략)에 나오는 이야기다. 기원전 7세기 중국 송나라의 양공이 초나라와 전쟁을 벌일 때였다. 강가에 먼저 도착한 송양공의 군대는 초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하 장수가 "적이 반쯤 강을 건넜을 때 공격하자"고 제안했지만 송 양공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 진용을 채 가다듬지 못하고 있을 때 다시 공격하자고 했지만 송 양공은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다"는 태평스런 이유였다. 그러나 송나라는 이 전쟁에서 완패해 비참한 꼴이 되고 만다. 宋襄之仁(송양지인)이라는 고사가 탄생한 배경이다. 뒷날 사람들은 때 아닌 예절을 내세우는 어리석음을 비웃어 이 말을 쓴다.
서양에도 이와 유사한 일화가 있다. 18세기 중엽 7년 전쟁 때 루이 15세의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벨기에에서 맞붙었다. 양편 선봉대가 50보 정도의 근거리에 마주하자 양군 지휘관들이 앞으로 나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영국군 부대장이 프랑스군에게 "먼저 사격을 하시라"고 정중하게 예절을 차렸다. 프랑스 부대장이 이에 질세라 당신네가 먼저 쏘라고 응수했다. 해프닝 끝에 영국군이 일제히 총을 쏘아붙이자 프랑스 선봉부대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는 이야기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사교적 예절의 대명사로 전해진다.
지역의 민선 4기 단체장들이 임기 1년을 맞았다. 그동안의 공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르내린다. 공도 많았지만 과도 적지 않았다. 그런 평가를 떠나 한 가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지사의 개인 관계다. 두 사람은 민선 출범 인사를 함께 다녔다. 중앙부처를 상대로 공동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김 시장은 행사장에서 김 지사를 자주 '형님'으로 챙긴다. 김 지사도 그에 못지않게 김 시장을 띄운다. 두 사람 다 겸손과 인화에는 장기가 있다. 이렇게 개인관계가 좋으니 행정협조도 잘 되고, 시와 도도 한결 가까워졌다.
당연한 일을 왜 떠드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 지방관은 민심교화를 주요 업무의 하나로 삼았다. 민심이 바로잡혀야 사회가 건전해질 수 있다는 유교적 질서관에 따른 것이다. 요즘 우리 정가는 민심을 교화하기는커녕 오히려 흉악하게 만든다. 사악하고 악독한 수준으로까지 치닫는다. 정치가 상대를 '상징적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투쟁이라지만 그 수단과 방법이 거의 정신병적이다. 그래서 송양지인과 같은 어리석음이 오히려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한 자락의 여유가 우리의 꽉 틀어막힌 삶에 시원한 통풍을 해줄 것만 같다. 시장과 지사, 두 사람의 관계를 긍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시장 지사의 화합은 단순한 '두 사람 관계'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구 경북의 민심은 상당히 오랜 기간 '경상도 하와이'로 폄하되어왔다. 의리와 지조가 있는 선비로 대접해주던 시대는 저 멀리 가버렸다. 서로 잘났다며 목청을 돋우고 남을 헐뜯는 분위기가 지역 바깥으로까지 심심찮게 새나간다. 누워서 침 뱉는 꼴이다. 이래서는 될 일도 안 된다. 비약일 수 있지만 상인동 지하철 참사, 지하철 방화 같은 나쁜 일들이 이어진 것도 지역 민심의 악화에 그 원인이 있을지 모른다. 이 민심의 치유가 시장 지사에서 비롯돼야겠기에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화합이 있어야 지역 발전을 위한 구심력이 생긴다. 두 사람의 화합이 이미 많은 일들을 원만하게 풀어가고 있다. 좀 지나쳐서 탈이지만 전라도 사람들의 구심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모두가 형, 동생이요, 지역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심동체다. 필자가 만난 전라도 언론인들은 입을 맞춘 듯 지역문제에 대해 똑 같은 답변을 한다. 의도성을 갖고 사람 키우는데도 일사불란하다. 경상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지금 대구 경북에 필요하다. 대구 경북이 도매금으로 세상모르는 얼간이 취급을 당하는데 혼자 잘났다고 떠들어 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시장 지사뿐 아니라 지역의 모든 기관 단체 조직들이 지역 발전을 위해 먼저 양보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 바보들이 많아져야 지역의 미래가 열린다.
朴 珍 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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