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 한잔의 단상] 아버지가 된다는 것

"여기 병원인데요, 의사 선생님이 가현이 입원시키라는데 어쩌면 좋아요?" 아내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다. 텐진(天津) 난카이대학 학회에 참석하느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행장을 꾸릴 때만 해도 아비 닮은 작은 눈에 방실웃음 가득했습니다.

불법영업 자가용이 수배되었습니다. 통상 텐진에서 베이징까지는 차로 2시간, 적정요금 300위안, 그러나 흥정 할 시간이 없습니다. 요구하는 400위안에 100위안을 더 얹어 500위안을 줍니다. "달려 아저씨!" 돈 포식한 중국차가 한국특산 대포차로 변신합니다.

폐렴입니다. 중국으로 건너온 지 한 달째, 잘 버티던 녀석이 지친 것입니다. 갑자기 열이 나서 병원을 찾았는데 입원을 권한 것입니다. 머리에 주사를 놓아야 하는데 매일 꼽고 빼는 것이 어려울 거라 합니다. 중국병원의 의료체계를 잘 알고 있는 아비는 아이를 들쳐 업습니다. "통원치료 하겠소."

정확하게 9번, 9일 동안 전쟁을 치룹니다. 울고 발버둥 치는 아이의 머리에 주사를 놓는 것은 가혹합니다. 앞머리가 면도날에 밀립니다. 껍데기가 벗겨지듯 스립니다. 아이보다 더 우는 어미를 문밖으로 밀어내고 아이 몸을 감싸 누릅니다. 간호사 둘이 머리를 잡습니다. 카멜레온처럼, 두려움과 고통으로 새파래진 아이와 살빛을 맞춥니다. 아픔이 소름으로 돋아 우둘투둘한 돌기가 됩니다.

링거를 머리에 꽂은 아이가 아비를 보고 웃습니다. 세상 나들이 겨우 7개월째, 울고 웃는 것을 제외하고는 의사소통수단이 없습니다. 아파도 아프다 할 수 없고,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도 못하는 상황, 한계를 뛰어넘은 녀석의 살인미소에 고막이 찢어집니다.

마지막 치료를 마치던 날, 전승기념 사진을 찍습니다. 괴물의 성 같던 병원이 공원으로 변하고, 아이의 머리에 붙은 반창고가 훈장이 되어 빛납니다. "가현이 아빠, 우리 현이 앞머리 자라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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