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리면 쌀이 쏟아져 나온다는 동화 속 맷돌처럼, 빵굽는 타자기라도 있으면 좋겠다. 타자기에 글자를 '톡톡' 쳐 낼 때마다 고소한 빵이 '툭툭' 튀어나온다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배고픈 사람들이 그런 타자기 하나씩 지닐 수 있으면 좋겠다. 정신의 터에 씨 뿌리고, 김 매고, 수많은 낮과 밤을 견디며 영글은 알곡들을 탈곡기 같은 타자기로 '탁탁' 수확하여 마침내 육신의 허기진 곳도 따스하게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글을 '수확'한다는 건 어쩌면 농사짓는 일보다 더 길고 힘든 시간과 노동을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글을 쓰기 위해 들인 노력에 비해 그 대가가 '엄청' 형편없다는 것은 폴 오스터가 살던 때나 지금의 시대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전업작가의 대부분이 아직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임을 알리는 기사가 신문에 종종 등장하는 걸 보면.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는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었다. 글 쓰는 일은 홀로 걸어가야 할 고독한 길이며, 글만 써서는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는 걸 그도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는 돈에 무지하지도 않았고 결코 돈을 얕보지도 않았다. 그의 부모는 돈이 많았지만 늘 돈 때문에 싸웠고 결국 돈 때문에 이혼했다. 그는 누구보다 돈의 효용성과 돈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부자 아버지를 둔 자신의 행운이 불편했던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집 자가용은 너무 번쩍거리고 최신식이고 값비싼 것이어서,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지를 보고 감탄하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 같았다. 호화로운 승용차를 타는 나 자신도 부끄러웠지만, 그런 것을 허용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이렇듯 예민하고 섬세한 기질을 타고 난 소년은 '작가'라는 꿈을 향해 세상이라는 정글 속으로 겁없이 들어간다. 웨이터로 일하기도 하고, 유조선을 타기도 하고, 번역 일을 하고, 서평과 영화평을 쓰기도 한다. '작가와 시인들은 이른바 문예창작과가 개설되어 있는 대학에 한자리 얻으려고 서로 할퀴고 짓밟으면서 끊임없이 쟁탈전'을 벌이지만, 그는 세상의 통념에 휩쓸리고 싶지도 않았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끝까지 예술을 하는 목적의 순수성을 지켜내리라 결심한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신생활과 이윤추구의 생활을 양립할 수 없다던 그의 '오만'은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아내와 아이가 생기자 점점 더 빈곤의 수렁으로 빠져 허덕이던 그는 일확천금을 노려 야구게임을 만들기도 하고 탐정소설을 써 보기도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결국 아내와는 이혼하고 아버지도 세상을 떠난다. 이처럼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그는 겨우 깨닫는다. 자신의 영혼이 육체와의 싸움에서 졌음을.
'가난하던 작가가 300파운드 연금을 받게 되자 그제서야 종달새 노래가 들리고 나무가 보이고 노래가 나왔다'던 책 처럼, 이 책도 '밥벌이의 엄혹함'을 절절하게 말하고 있다.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다보면 꿈은 멀리 달아나고 꿈을 잡으려 버둥거리다보면 먹고사는 일이 엉망이다. 이 딜레마를 초월할 수 있는 길은 아직도 없는 걸까?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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