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히 흐르던 남한강에 댐이 생겼다. 그 때부터 강물은 산이 있으면 돌아 흐르고 너른 곳이 있으면 다시 고이면서 일체의 걸림이 없이 흐른 지 20여년.
충주호는 맑고 깨끗한 수면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로 바뀌었다.
복잡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심신의 재충전을 위해 찾은 충주호 인근에는 월악산 국립공원과 연계돼 있어 맑은 물, 푸른 산과 많은 문화유적 등 풍성한 볼거리가 지천에 널려 있다. 이 중 특히 충주에서 단양까지 호수를 가로지르는 130리길(약 52km) 쪽빛 여행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 손색이 없다.
시원한 강바람을 쐬며 둘러보는 준봉들의 군무와 기암절벽의 향연.
쾌속선을 타고 둘러보는 충주호 뱃길은 이처럼 예사 호수에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가 있다.
소백산맥 자락이 빚어내는 산의 형상과 옥순봉, 구담봉이 연출하는 절경은 충주호만이 풍길 수 있는 '호수의 아우라(Aura)'인 셈이다.
산허리로 난 길을 따라 돌 때는 호수가 저만치 멀어지는 듯 느껴지더니만 뱃길을 따라 호수에서 산을 바라볼 때는 산은 이미 호수 안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든다.
물과 어울린 자연 속 너른 호반에서 풍겨져 나오는 넉넉함이 아닌가 싶다.
한여름을 코앞에 두고 녹음이 더 농후해진 산과 들은 싱그러운 초여름의 풍경을 수놓기에 여념이 없다. 중앙고속도로 단양 IC을 빠져나와 충주호를 향해 내닫는 5번 국도주변도 여느 곳처럼 비취빛 자연에 한껏 물들어 있다. 달리는 차창사이로 내비치는 산자락을 따라 짙은 녹음이 기다란 그늘을 드리운다.
대구'경북에서 충주호까지 최단거리로 통하는 관문은 중앙고속도로 북단양IC와 남제천IC가 있으나 굳이 우회길인 단양IC를 택한 것은 단양 팔경의 하나로 유명한 도담삼봉을 보기위해서다.
단양읍내를 지나면 보이는 도담삼봉은 강폭이 좁은 남한강 한 가운데 세 봉우리가 솟아 있는 형상이다. 중앙 봉우리엔 삼도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어 이곳에 올라 시 한 수를 읊으면 누구나 신선이 된 듯한 감흥에 젖을 만큼 충주호로 가는 길에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이다.
도담삼봉에서는 남한강 줄기와 월악산 국립공원의 준봉들이 틔워준 길을 따라가면 충주호다.
#남한강 물길을 막아 조성한 '충주호'
단양군, 제천시, 충주시 경계를 아우르는 충주호 일대는 예부터 경승지가 많고 늘 맑고 시원한 강바람이 불며 밤이면 수면에 비치는 밝은 달빛이 자태를 드러내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시원하게 하늘로 솟구치는 고사분수의 장관과 관광쾌속선을 타고 산과 물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덕택에 충주호반은 뱃길로 이어지는 남한강 쪽빛 여행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호반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5개 나루터(충주댐나루, 청풍나루, 신단양나루, 장회나루, 월악나루) 중에서 선택한 쪽빛물길은 청풍나루터(제천시 청풍면)에서 장회나루터(단양군 단상면)까지 1시간여의 왕복뱃길.
미끈한 유선형의 쾌속선에 오르자 추진력을 얻으려는 기관음이 온몸을 진동시킨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만, 속력을 더해가면서 드넓은 호반의 수면에 하얀 물줄기는 부채 살처럼 퍼져나간다.
뱃전에 몸을 맡기니 시원한 호수바람과 한껏 물이 오른 신록의 푸르름이 좌우로 펼쳐지고 배는 그 사이를 곡예 하듯 미끄러진다. "충주댐이 생기기 전 지금 달리는 이 물 밑엔 제천시 청풍면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선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인걸은 간데없어도 산천은 옛 모습 그대로다.'는 옛 사람들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회상도 잠깐. 녹색 비단을 덮은 듯한 주변 산세와 번지점프를 위해 세운 철탑에 마음을 빼앗긴다. 잠시 후 머리 위로 옥순대교의 그늘이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이미 물의 경계는 제천이 아닌 단양이다. 비단에 수를 놓았다는 금수산(錦繡山)이 자태를 드러냈다. 월악산 국립공원 최북단에 우뚝 솟은 산은 빼어난 산세를 자랑한다.
이윽고 배가 충주호 뱃길관광 중 최고 절경에 손꼽히는 옥순봉과 구담봉을 끼고 돈다.
희고 검은 바위가 대나무 순 모양으로 힘차게 치솟아 선비의 절개을 연상하게 하는 옥순봉은 여러 개의 기이한 바위들이 조화의 이치를 살려 그 기복과 굴곡이 자유분방하다. 원래 청풍면에 속했던 옥순봉은 단양군수로 부임하는 퇴계 이황이 석벽에 '단구동문(단양의 관문)'이란 글을 암각하면서 단양군에 속하게 됐다. 퇴계의 각별함이 있는 만큼 소금강이라 불리며 경치가 아름답다.
구담봉은 물 위 기암절벽이 거북을 닮았으며 물 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이 노니는 연못의 형상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 인근에 제비봉과 금수산, 멀리 월악산이 이 구담봉을 둘러싸고 있어 가히 단양 8경의 으뜸이라 할 만하다. 호반에서 바라본 장회나루터도 모나지 않고 둥근 바위들이 푸른 소나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산세를 배경삼아 그림엽서처럼 조용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산은 녹색비단을 닮았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석양의 구담봉엔 저녁놀 드리웠네/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네.
충주호는 물과 잘 어우러진 봉우리와 산이 있어 그 풍광이 더욱 정겹다. 충주호 배편 요금:8천원~1만 3천원.
#옛사람의 숨결이 오롯한 청풍문화재단지
청풍나루 위 쪽 망월산 마루에는 청풍문화재단지가 자리해 충주호를 굽어보고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많은 문화유적이 있던 청풍면 일대가 물에 잠기게 되자 후손들이 선조의 숨결을 느끼고자 수몰지역의 문화유산을 원형대로 현재의 위치에 이전, 복원해 놓은 곳이다.
보물과 지방유형문화재, 기념물, 지석묘 등 총 53점을 1만 6천여 평에 고루 배치해 놓아 남한강 상류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천장에 호랑이가 그려진 출입관문인 팔영루를 지나 고가에 이르면 디딜방아, 소여물통 등 옛 사람들의 집안 생활을 짐작케 하는 물건들이 소담스럽게 진열돼 있다. 짚으로 짠 삼태기며 각종 걸이가 선조의 손재주를 보여주며 안채와 사랑채를 담장으로 경계 지어 남녀유별의 유교사상이 건축물에도 고스란히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높이 341m의 통일신라 말기 조성된 석조여래입상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얼굴에 두툼한 양볼과 뚜렷한 인중, 어깨까지 드리워진 두 귀가 인상적이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기둥의 가운데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의 아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마루를 설치한 한벽루에 오르면 청풍호반 충주호를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산마루에 있는 망월산성과 망월루에서는 사방으로 청풍명월의 진풍경을 만끽할 수 있어 충주호반 여행의 또 다른 재미가 아닐 수 없다.
청풍대교에서 제천까지 약 10km의 구간은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충주호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단양 IC에서 단양방면 5번 국도를 타고 단양읍을 지나 계속 가다가 제천시 초입에서 좌회전, 충주호(청풍호) 이정표를 따라 간다.
도담삼봉을 지나치려면 남제천IC에서 내려 우회전, 약 8km를 가면 충주호에 다다른다.
◇여행 팁
청풍문화재단지에서 우측으로 제천가는 길을 따라 차로 5분정도 가면 보이는 청풍면 물태리에는 댐건설로 터전을 잃은 수몰민들이 새롭게 정착한 마을로서 충주호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촌이 형성돼 있다. 돼지고기 불고기와 향어 및 송어, 민물고기를 위주로 한 회와 매운탕이 주 메뉴이다.
물태리에서 조금 떨어진 '예촌'은 전원풍의 음식점으로 더덕정식과 곤드레 비빔밥이 먹을 만하다. 토속적인 찬과 직접 담근 구수한 된장찌개가 여행자의 허기를 달래는데 모자람이 없다. 문의:043-647-3707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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