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빗나가는 우리 아이, 이유있다

흔히 부모 중에 한 명이 없거나 조부모와 함께 자란 아이들이 문제아 또는 비행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춘기를 거치면서 일탈을 일삼고 매사에 뒤틀린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

대구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진혜전(48) 사무국장은 요즘 청소년,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양언니'에 대해 말했다. 양언니는 말 그대로 피가 섞이지 않는 가족관계 맺기를 의미한다. 선후배라는 딱딱한 관계보다 훨씬 부드럽고 친근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양언니, 양동생 관계는 대개 동네에서 '퀸카'로 꼽히는 아이들끼리의 모임.

초등학교 5, 6학년이 '포섭' 대상이 된다고 한다. 용모도 단정하고 학업 성적도 상위권인 후배에게 중학교 선배가 "내 양동생이 되면 중학교에서 널 돌봐주겠다."며 접근한다. 같은 지역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함께 다니다보니 서로 잘 아는 사이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포섭 대상이 된 아이는 주목받는 언니들과 같은 부류에 속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중학교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쉽사리 유혹에 빠진다.

함께 어울려 노래방, PC방에 가고 남학생들과도 밤늦게 만난다. 술과 담배를 배우기도 한다. 이 때 필요한 돈은 양동생들에게 '빌려달라'는 형식을 취한다. 대개 이렇게 빌려주는(결국 되돌려받지 못하는) 돈은 한달 평균 10만 원을 웃돈다. 제 때 '상납'하지 못할 경우,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시작되기 때문에 용돈만으로 부족할 경우 다른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빼앗는 경우가 발생한다.

한 중학교 교사는 "얼마 전 학교에서 집단폭력 사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양언니들과 더 이상 어울리지 않겠다는 후배를 집단으로 구타한 일이었다."며 "부모가 낮에 없는 학생 집이나 원룸 옥상 등에 아지트를 만들고 늘 어울려 다닌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부모들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 '우리 아이는 너무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났다.'거나 '집단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남의 잘못만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아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모에게 호소하지만 대개 묵살당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다. 자녀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기 때문에 무심코 뱉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때로는 생활에 쫓겨, 하루하루 살기에 바빠 자녀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모른 척하기도 한다.

청소년 동반자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김주영(37) 씨는 "많은 부모들이 규칙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과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거나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방황할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데도 부모들은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무조건 현상만을 바로 잡으려 강압적 자세를 취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꾸중하는 수위도 문제다. 잘못한 까닭과 바른 행동을 가르치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치우쳐 자녀를 인격적으로 모욕하고 심각한 신체적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네가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넌 도대체 언제쯤 인간이 될래?", "제발 네 형이나 동생의 절반만 따라해라."라는 언어 폭력은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되고, 결국 부모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게 만든다. 결국 부모들은 문제를 바로 잡기 힘들 정도로 진행된 뒤에야 비로소 심각성을 깨닫지만 때늦은 후회일 때가 많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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