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준호(가명)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다. 또래 아이들보다 늦깎이인 셈. 준호는 10살 때 현재 살고 있는 민간 보육시설에 왔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았다고 한다. 청소년 동반자 프로그램에 의뢰가 들어온 것은 지난 4월. 같은 시설에서 지내는 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문제가 됐다. 동반자를 맡고 있는 이시형(28) 상담사와 만난 지는 지금까지 10여차례.
처음 만날 때만 해도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매주 한 차례씩 약속을 정해 만나고, 아이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주면서 공감을 표하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심리검사를 한 결과, 가벼운 우울증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굳이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행동을 우울증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 동반자와는 서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사이가 됐다. 학교에도 꼬박꼬박 나가고, 동생들에 대한 폭력적인 모습도 사라졌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표면상 일탈행동이 없어졌다고 해도 잠재된 문제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
이시형 상담사는 "준호는 상담에 임하는 자세도 상당히 양호한 편이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편"이라며 "다만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머니와의 만남을 통한 근본적인 문제해결까지 동반자가 개입하기는 어려울 실정"이라고 말했다.
활동 중인 청소년 동반자는 15명(전일제 3명, 시간제 12명)이며, 상담이 진행 중인 청소년은 96명에 이른다. 원래 청소년 한 명당 6개월의 시간이 주어졌고, 연간 192명을 상담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투입하는 시간과 돈에 비해 '실적'이 너무 적다는 중앙 정부의 판단에 따라 목표치가 2배로 늘었다. 결국 청소년 한 명당 3개월로 시간이 줄었고, 상담사들은 그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상담사는 "처음 의뢰가 들어온 뒤 아이들과 친숙해지는 시간, 즉 '관계 형성'까지 한달에서 한달 보름 이상 걸리는데 석달만에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지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큰 불만 끄고 잔불은 없애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스스로 위기 상황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아예 상담을 거부한 채 행동 개선에 나서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형제의 경우 등교 거부, 갈취, 폭력 등 여러 일탈행위를 보이고 있지만 상황 개선이 전혀 안되고 있다. 어머니도 지친 나머지 아이들을 더 이상 훈육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아이들 역시 "이대로 살다가 죽겠다."면서 문제에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하루 10시간 가량 인터넷에 매달리는 한 중학생 역시 상담 시간이 20분 정도만 되면 불안 증세를 보이며, 더 이상의 대화를 기피한다고 했다.
여건이 어렵지만 상담사들이 보람을 느끼는 사례도 많다. 특히 부모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적극 나설 경우 예상보다 훨씬 쉽게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냉랭하게만 대하던 상담 대상 청소년들이 가끔씩 '선생님 뭐 하세요?',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만 보내와도 뿌듯함을 느끼며 힘을 얻는다. 한 상담사는 "가족들과 외식 한 번 해보는게 소원이라는 한 아이의 말을 듣고 무척 가슴이 아팠다."며 "작은 칭찬이 아이들을 기쁘게 하고, 작은 격려가 스스로 일어서는 힘을 내게 한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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