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유정의 영화세상] 러브레터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지옥의 왕 하데스를 만나러 간다. 하데스는 아내를 돌려주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뒤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비명과 음울한 동물의 울음 소리가 가득한 동굴을 빠져나오는 그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는 실수를 저지르고 아내는 영원히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자신의 실수로 아내를 영원히 잃게 된 오르페우스는 상실감을 노래로 부르며 살아간다.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부른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많은 전설과 신화, 영화들을 보면 "뒤돌아보지 말라"라는 격언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도 그렇고, '올드 보이'도 그렇다. 여기서 뒤돌아보지 말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단지 물리적으로 고개를 돌리지 말라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를 되돌아보거나 캐묻지 말라는 뜻일까?

'뒤돌아보지 말라'라는 오래된 격언은 과거를 그저 묻어두라는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오대수와 몬스터로 나뉜 인물에게 주어진 주문처럼 말이다. 하지만 추억이란 간혹 되돌아 본 우연한 순간이 평생의 선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하얀 눈과 입김이 그 무엇보다 먼저 기억되는 작품, '러브 레터'처럼 말이다.

이와이 슈운지를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일본 감독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 그 작품이 바로 '러브 레터'이다. '러브 레터'는 비밀처럼 한국에 상륙했었다. 당시 일본 영화는 공식적 수입이 금지되어 있었고, 영화는 불법 복사본형태로 대학가를 떠돌았다. 앞 세대 선배들이 멕시코 혁명사를 몰래 돌려보았던 것과는 달리 십 여 년 전 대학 가에는 일본 영화와 하루키가 접속 코드로 떠돌아 다녔었다. 그런 의미에서 '러브 레터'는 스무 살 감수성의 주파수와 공명하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후지이 이츠키는 자신에게 잘못 온 편지로 인해 잊고 있던 과거를 한 꺼풀씩 벗겨내 대면하기 시작한다. 이미 스물 다섯이 훨씬 너머 서른 살 무렵이 된 후지이 이츠키에게 중학교 무렵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과거에 불과하다. 그런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담긴 애정은 그녀가 묻어 두었던 한 때를 소환해낸다. 소환장처럼 마지막 장면의 대출 카드 한 장은 그녀의 봉인된 기억을 일깨우고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의 추억을 두드린다.

눈 덮인 산을 보며 "당신은 잘 지내십니까"라고 묻는 연인, 죽은 연인을 그리워 하고 묻어두었던 첫사랑을 길어내는 '러브레터'의 정서는 온통 '뒤돌아보기' 투성이다. 하지만 이 뒤돌아보기는 사악한 저주와는 거리가 멀다. 두꺼운 각질 속에 묻혀 있는 부드러운 속살처럼 '러브 레터'는 뒤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소중한 추억을 드러낸다.

어쩌면 수많은 어른들 그리고 현대인들은 뒤돌아보지 않아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 지도 모른다. 뒤돌아보는 순간 마주치는 것은 형편없는 내가 아닌 여리고 순수한 '나'의 모습이다. 세상은 그 순진한 모습을 요구하지 않는다. 뒤돌아 보는 것이 힘겨운 까닭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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