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대구미술관 건립에 부쳐

마침내 대구시민들의 오랜 숙원이던 시립대구미술관 건립이 시작되었다. 특히 가장 많은 미술인구를 가졌으면서도 철저히 외면 받아야 했던 미술인들이 갖는 기대는 더욱 각별한 것이리라.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대사적 사명감으로 철저히 준비해 21세기 선진문화시민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전개로만 보면 기대 못지않게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우선 7년 전에 확정된 설계대로 건설한다는 것 자체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자재나 외형만 놓고 보아도 독자적이거나 차별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입지선정 때부터 지적되어 온 문제지만 접근성 또한 내세울 만한 조건이 못된다. 그렇다고 내용물을 구성할 넉넉한 예산이 뒷받침된 것도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도 정작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방향성 설정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기존의 건립추진위원회를 폐기하고 첫 삽도 뜨지 않은 채 서둘러 개관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일관성 잃은 절차의 난맥상 또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대구미술관이 현재의 위치에 건립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던 사람에게 소위 개관추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겼다는 것도 대구시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문제다.

명칭만 해도 그렇다. 사실 '대구시립미술관'은 미술관 건립의 성격이지 이름이 아니다. '대구시'가 세운 '미술관'이란 뜻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고유의 이름이 없는 상태다. 굳이 고집한다면 '시립 대구미술관'이 맞다. 다른 도시의 경우를 모방할 필요는 없다.

대구는 미술의 도시다. 따라서 대구미술관은 다른 도시와는 차별성을 지녀야 한다. 그것만이 존립의 이유이며 , 대구미술의 자존심이다. 그리고 대구미술의 미의식으로 전통을 세워야 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시대사의 거울로 만들어야 한다.

연간 수십억 원씩의 적자를 내면서도 그저 또 하나의 미술관으로 전락해버린 부산이나 광주 등 여타 시립미술관들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급히 해치우려 해서는 안 된다. 애당초 서둘러 확정해버린 설계도 때문에 지금도 발목이 잡히는 것처럼 지금이라도 대구미술관의 성격과 방향성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미술관을 세울 것인지가 분명해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시민의 동의가 필요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짝퉁을 생각한다면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범죄가 될 것이다. 유구한 역사성의 맥락에서 속단이나 오진(誤診)을 막아야 한다. 그것이 시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자치행정의 책무일 것이다.

민병도(화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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