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이 없는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200여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재외국인의 투표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정치권의 이해득실 관계 때문에 언제 시행될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헌재의 28일 판결은 지난 1999년 '현행법상 북한주민이나 조총련도 한국 국민인데 이들에게 선거권을 줄 경우 이들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다. 막연한 우려만으로 모든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또 인터넷 보급으로 정보접근이 용이해졌고, 온라인투표 등의 방법으로 기술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게 된 것도 헌재의 '변심'을 거들었다.
하지만 도입시기는 장담할 수 없다. 국회가 법안을 서둘러 만들 경우 올해 대선이나 내년도 총선부터 바로 적용할 수 있지만 시간 여건상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대세다.
선거법 개정을 위해서는 ▷선거관리를 담당할 기구 설립 ▷투표소 설치 ▷신분 확인 ▷투표방식 결정 ▷선거운동 방법 확정 ▷공정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물리적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현행 선거법상 해외부재자 투표는 선거일 전 100일부터 부재자 등록을 받아 선거일 전 40일까지 투표를 완료하게 돼 있다. 대선일인 12월 19일부터 역산하면 9월초에는 해외부재자 등록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것.
또 정치권의 의지도 강하다고만 볼 수 없다. 총론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각론에 있어서는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헌재결정에 대해 "당연한 결정"이라며 "경제대국으로서, 정략적인 손익계산을 뒤로 하고 재외국인도 국가에 대한 의무를 보다 충실히 할 수 있게 하는 길이 열린 것을 크게 환영한다."고 했다. 중도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도 적극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참정권 부여 대상을 '단기체류자를 포함한 영주권자'로 규정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유학생·상사원 등 단기체류자만'으로 제한하는 등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정치권은 목숨과도 같은 '표'에 대한 문제라서 조그만 이견이라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재외국인 중 유권자 수가 대략 200만 표 이상으로 추정되고 이는 당락에 영향을 충분히 끼칠 수 있는 규모다. 국회는 오랜 정치권의 득실 계산이 끝난 뒤에야 선거법 개정에 착수할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라 조기추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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