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여성 대사 1호는 이인호 현 명지대 석좌교수다. 서울대 교수이던 1996년 주 핀란드 대사에 발탁됐고 이어 주 러시아 대사를 역임, 한국 외교사에 새 지평을 열었다. 이 전 대사는 당시 교수에서 외교관으로의 轉職(전직) 문제를 두고 엄청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여성계와 주변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고, 그것이 결국 인생의 마지막을 외교업무에 바치게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불과 10년 전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화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로나 남지 않을까. 머지않아 한국 여성 외교관들이 국제 사회를 종횡무진 누비는, '여성 외교관 시대'가 활짝 열릴 것 같기 때문이다.
올해 외무고시 최종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이 무려 67.7%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 1993년만 해도 2.6%(1명)에 그쳤던 외시 여성 합격자 수는 2001년 처음으로 두자릿수 합격률을 낸뒤 매년 30, 40%대를 기록했다. 2005년에 50%대 고지를 넘어서더니 이번엔 드디어 70%대에 육박하는 놀라운 합격률을 보인 것이다. 31명의 합격자 중 21명, 곧 3분의 2가 여성이다.
외시의 초강세 '女風(여풍)'은 여성 인재들의 公職(공직) 선호 분위기와 함께 외국어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유리한 점도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여성 파워는 외시뿐만은 아니다. 작년 사법시험의 경우 37.6%, 행정고시는 40.1%가 여성 합격자였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실력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시험을 쳐서 들어갈 수 있는 公職(공직) 외엔 아직도 여성들에게 취업 문턱이 높다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어쨌건 '외교관'이 여성들의 도전할만한 멋진 전문직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여성과 흑인이라는 이중의 장벽을 뚫고 세계 외교가에 우뚝 서게 된 배경에는 그녀 가문의 정신적 유산이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두 배로 열심히(Twice As Good)'자세다.
미국의 LPGA를 뒤흔드는 한국 골프 낭자군처럼 우리의 예비 여성 외교관들이 국제무대에서 코리안 우먼 파워를 드높일 모습이 멀지 않았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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