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학교 앞 우산들고 기다리시던 어머니

비가 온다. 비가 오랫동안 끈질기게 내릴 조짐이다. 갓 떨어진 빗방울이 땅에 닿기도 전에 차바퀴에 깔려 굴러가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오래전 일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 장을 보러 엄마가 나가신 사이에 갑자기 비가 내렸다. 처음에 비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사소한 물방울처럼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더니 얼마쯤 지나자 물을 가득 머금은 하늘을 누군가 칼로 찢어 놓은 것처럼 쏟아졌다. 엄마가 우산을 미처 챙겨가지 않으신 것을 안 것은 한 시간 뒤였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우산을 챙겨들고, 빗속에 몸을 끼워 넣었다. 바람이 너무 몰아치는 바람에 우산 같은 것은 소용이 없었다. 시장에서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엄마를 만났을 때는 나 또한 온몸이 젖어 있었다. 엄마는 괜한 고생을 한다고 비에 젖은 내 몸을 조그만 손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거의 비슷한 분량으로 젖은 당신의 몸은 아랑곳하지도 않으신 채.

어린 시절, 조금이라도 비가 올 듯하면 늘 학교 앞에서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리시던 엄마를 기억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산은 노란 아동용에서 3단 자동우산으로 바뀌어 갔다. 내가 우산을 들고 엄마를 마중 나간 그때는 한 번이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날들을 엄마는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때로는 학교 정문에서, 때로는 학원 앞에서, 때로는 버스정류장에서.

오늘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 일기예보는 전한다. 엄마에 대한 나의 사랑도 장마가 던진 추억과 함께 다시 시작된다.

성혜진(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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