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뇌의 신비

인간의 뇌는 1~1.4㎏ 정도로 몸무게의 2%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체 혈액의 15%를 소비하고 산소 20~25%를 사용한다. 뇌에 공급되는 혈액이 15초만 차단돼도 의식불명에 이르고 4분간 중단되면 뇌세포는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을 입는다. 1천억 개에 이르는 뇌세포는 태어나면서부터 매일 감소하기 시작한다. 1초에 한 개씩 매일 10만 개 가량이 감소한다. 뇌가 발달하는 것은 세포간 연결이 이뤄지는 것이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뇌가 크다거나 뇌세포가 많아서가 아니라 세포간 연결이 활발하다는 의미다.

1천 500여명의 뇌 수술을 집도한 영남대학교병원 김오룡(신경과) 병원장은 "적어도 신경외과 분야에서는 뇌에 대한 비밀이 상당 부분 밝혀지고 있다."며 "정신적 변화이건 뇌의 기질적 변화이건 치료가 가능한 분야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과거 단순이 '미쳤다'고 판단했던 증상들이 뇌 특정 부위의 손상 때문이라는 것도 차츰 밝혀지고 있다.

김 병원장은 "가령 뇌 기저부에 있는 림빅 시스템에 손상이 오면 감정 조절이 안되고 과도한 성욕과 식욕을 드러내는 등 이상 증상을 보이는데 예전 같으면 그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치부했다."며 "뇌 손상은 외상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지만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받은 정신적 충격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뇌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뇌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 결과가 쏟아진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 기억력, 특히 학습능력을 좌우하는 뇌의 기능부터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부위와 신경전달물질에 대한 의문점들을 풀어보자.

◇ 뇌를 알면 IQ가 보일까

머리가 좋은 학생일수록 뇌의 정수리 부분(두정엽)이 많이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이건호 교수(생명과학부) 연구팀은 기능적 자기공명장치(fMRI)를 이용해 사람의 지능 발현에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대뇌피질의 일부분인 '후두정엽'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뇌영상분야 국제 학술지인 '뉴로이미지' 인터넷판에서 밝혔다. IQ 상위 1% 이내에 속하는 한국과학영재학교 등 특목고 학생 25명과 보통 지능을 가진 인문계'실업계 고교생 25명 등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능이 높은 집단은 어려운 과제를 수행할 때 양쪽 뇌의 정수리 부분인 후두정엽 부위의 활동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

그렇다면 IQ 테스트를 하지 않고 뇌를 스캔하는 것만으로도 지능이 얼마나 뛰어난 지 알 수 있을까? 경북대 이호원(신경과) 교수는 "IQ 차이를 알려주는 장치는 아직 없다."며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한다는 추론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한다고 해서 반드시 IQ가 높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IQ를 측정하는 방법은 전통적은 문답식의 인지지능검사, 즉 IQ 테스트 외에는 없다는 것. IQ는 종합적 사고 능력을 뜻하고, 뇌 스캔은 특정 영역의 활성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머리가 좋아지는 방법은 있을까

먼저 치매와 건망증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건망증은 뇌의 일시적인 마비 현상이다. 주의력 산만, 스트레스, 피로, 우울감 등이 원인이 돼서 특정 사실을 까먹지만 누군가 귀띔을 해주면 금세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하지만 치매는 영원히 잊어버리는 증상이다. 누군가 말을 해줘도 기억을 되살릴 수 없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 등 치매에 걸린 20, 30대를 다룬 이야기가 소개되면서 '나도 혹시?'하며 병원을 찾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건망증일 뿐 치매는 아니다.

그렇다면 머리를 좋아지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호원 교수는 머리를 많이 쓰는 것이 것이 머리를 좋게 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머리를 많이 쓴 사람일수록 치매 진행도 늦춰진다는 것. 가령 초교 졸업, 고교 졸업, 대학 졸업 등 학력에 차이가 나는 3명의 치매 환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들의 치매 진행도는 비슷하다고 할 때 과연 누구의 뇌 세포가 가장 많이 손상됐을까?

정답은 대학 졸업자. 이 교수는 "대학 졸업자, 즉 두뇌 활동을 가장 왕성하게 했던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 비슷한 치매 정도를 보이지만 실제 뇌 세포 손상은 가장 큰 경우가 많다."며 "바꿔 말하면, 뇌를 많이 쓴 사람은 어느 정도 뇌세포 손상이 와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뇌를 적게 쓴 사람은 조금만 손상이 와도 뚜렷한 치매 증상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머리가 좋아지게 하는 약은 있을까? 아쉽지만 아직 그런 약은 발명되지 않았다. 학생들이 공부를 좀 더 오래 하기 위해 각성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다. 말 그대로 뇌가 피로한 상태인데도 각성제를 투여해 좀 더 오랜 시간 깨어있게 하고, 또 그 시간 동안 공부를 더 했기 때문에 성적이 올랐을 뿐이지 기억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깊은 잠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인간의 기억은 가장 깊은 수면단계인 렘(REM)에서 장기기억으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 IQ에 얽힌 재미난 연구

최근 노르웨이 오슬로대 연구팀은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통해 성장기간 동안 가족 내에서 차지한 서열이 IQ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징병대상 남성 24만 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IQ 테스트 당시 18~19세인 첫째 아들의 평균 IQ는 103.2였고, 둘째는 101.2, 셋째는 100.0으로 나왔다. 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손위 형제가 일찍 사망한 경우. 둘째로 태어났더라도 형이나 누나가 1살 이전에 사망한 경우 평균 IQ는 102.9이었고, 형제들이 사망한 경우 셋째 남성들의 평균 IQ가 102.6이었다. 연구팀은 맏이가 남동생이나 여동생을 가르칠 기회를 갖게 되고, 부모로부터 더 많은 자극과 기대를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만이 지능을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프랑스 툴루즈대학병원 임상역학 조교수인 막심 쿠르노 박사는 32~62세 남녀 2천200명을 대상으로 체중을 측정하고 지능검사를 실시한 후 5년 후 같은 조사를 다시 실시했다. 첫 검사에서 적정 체중 사람들은 어휘시험에서 단어의 56%를 기억했고, 비만 체중은 44%만을 기억했다. 두 번째 검사에서 적정 체중은 5년 전과 같은 기억력 수준을 그대로 유지한 데 비해 비만 체중은 단어 기억력이 37.5%까지 떨어졌다. 쿠르노 박사는 지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대뇌 세포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쳐 뇌 기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IQ가 높은 아이일수록 어른이 됐을 때 채식주의자가 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사우샘프턴대 연구진들은 1970년대에 IQ테스트를 했던 사람들을 상대로 20여 년 뒤 식생활과 직업 등을 알아봤다. 자료가 확보된 8179명 중 채식주의자들은 366명. 채식주의자들의 어렸을 적 IQ는 비채식주의자에 비해 남성과 여성 모두 평균 5 정도 높게 나타났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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