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자상사, 함께 일하기 어때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여자 상사

"저 여자, 도대체 귀를 달고 있긴 한거야?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제 멋대로 일을 처리해버리면 어쩌라는거야? 하여튼 여자는 말이 안통해."

장모(34) 씨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남자 상사라면 아마 넥타이 풀어재끼고 한바탕 대들기라도 했겠지만, 낭창하게 자기 할 말만 떠들어대는 여자 부장에게는 그런 방법도 통할 성 싶지 않다. 떠들어봐야 손해라는 생각에 냉수 한 잔만 들이킬 뿐.

장씨는 신규 업무의 기획서 작성을 맡았고, 이 과정에서 부장과 의견 충돌이 생겼다. 부장이 업무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외부 인사를 추천했지만 장씨 생각에는 아무래도 마뜩치 않았던 것. 그 이유에 대해 장 씨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열심히 설명했지만 부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그녀 마음대로 기획서를 수정해버렸다.

물론 장 씨 탓도 있다. 차라리 '일 그르치면 부장님이 책임질 겁니까? 아랫 사람 이야기라고 그렇게 무시하면 어쩝니까?'라며 큰소리라도 쳐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여자 상사인 탓에 말이 조심스러웠던 것. "단어선택부터 조심스럽다보니 강하게 의사 전달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남자 상사라면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한 마디 하겠지만 여자 상사다보니 저녁에 술 한 잔 하자고 청하기도 쉽지 않죠. 이래저래 짜증만 납니다."

남자 직원이 여자 상사를 모시고 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남녀가 가진 사고방식의 차이와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황모(29) 씨는 "여성들은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서기 때문에 같이 일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는 '기분'의 문제로 전락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한번 싫다고 낙인 찍어버린 사람에게는 감정이 앞서 싫은 티를 그대로 드러내더라고요. 그래도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자'라는 성(性)에 스스로 발목잡혀 컴플렉스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남성들의 주장도 있다. 김모(38)씨가 모시고 있는 여자 상사가 가장 많이 늘어놓는 푸념은 "난 여자이기 때문에 승진에서 손해보는게 너무 많아."라는 것. 하지만 김 씨의 생각은 다르다. 예전에야 여자가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세상이 달라졌다. "여자라서 승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 하는 걸 보면 '못할만도 하다'소리가 절로 나올때가 많습니다. 치열하게 일에 매달리려면 사실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많은 법이죠.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늘 우아하게 여자로 대우받고 싶은 욕망도 버리지 못하더군요."

'골드미스'도 남자 부하 입장에서는 '노 땡큐'다. 신부감으로는 사회적으로 적당한 지위에 오르고 연봉까지 많은 '골드'일지 모르지만 직장에서는 '처치곤란 노처녀'일 뿐. 금융권에서 일하는 한모(30) 씨는 "퇴근하길 싫어해 매일같이 밤 11시까지 일하는 여자 상사때문에 미칠 지경"이란다. "본인이야 집에 가 봤자 말할 상대도, 같이 밥을 먹어 줄 사람도 없으니 일에 매달릴 수 밖에 없겠지만 밑에 있는 우리는 무슨 죄가 있습니까? 과장이 매일같이 밤 11시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울며겨자먹기로 야근을 하는 우린 팔짝 뛸 노릇이죠."

◇여자의 적은 여자

"아, 듣기싫은 저 목소리. 어쩜 저렇게 째지는 목소리로 카랑카랑 짜증을 부릴 힘이 넘쳐나는지."

김모(27'여) 씨는 오늘 아침도 부장의 '재수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김 씨의 생각엔 유독 여성들에게만 까탈스럽기 그지 없는 부장이다. 똑같이 지각을 해도 남자 직원에게 하는 잔소리와, 여자 직원에게 하는 잔소리는 하늘과 땅 차이다. 얼마나 속사포처럼 쏴대는지 아주 귀가 뚫어질 지경이지만, 20분 지각한 남자 대리에겐 "무슨 일 있었어요? 일찍 서둘러 준비했어야죠." 한마디로 끝이다.

그래도 김 씨는 본인이 미모가 탁월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누가 봐도 미인에 속하는데다 톡톡튀는 성격을 지닌 한 해 후배 정모(25) 씨에게는 아주 노골적으로 신경질이다. 옷차림새에 말투까지 사사건건 '지적'에 들어간다. 특히 남자 상사들이 정 씨를 대놓고 귀여워하기라도 하는 날엔 눈이 아주 도끼날이 된다. "그럴 때면 절 못생기게 낳아준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긴다니까요."

여자들은 말한다. '여성의 적은 여자'라고.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남성에게는 '성별이 달라서 그렇겠지'라고 좋든 싫든 한 수 접어주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지만, 같은 여성에게는 아주 '칼'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올챙이적 격었던 어려움 쯤은 잊어버린 채 부하 여직원을 아예 비서부리듯 하는 사례도 있다. 이모(27) 씨는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여자 과장이 커피 뽑아다주는 것에서 슈퍼에 가서 과자를 사오는 일, 심지어는 집에 필요한 각종 물건을 사오는 일까지 별의 별 사소한 심부름까지 다 시키는 통에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호된 시집살이를 했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더 괴롭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여성 직장인들 사이에 생겨나는 '왕언니' 문화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모 화장품 회사 입사 6년차인 최모(31'여) 씨. 그녀는 입사 후 3년 만에 경쟁사로 스카웃됐다가 최근 다시 본래 직장으로 돌아왔다. 그녀를 본래 직장으로 돌아오게 했던 것은 바로 '언니 문화'.

여성이 많은 회사에는 으례 '왕언니'역할을 하는 고참 직원이 있게 마련이다. 연차가 낮은 여성 직원들은 이 왕언니 밑으로 서열화되는 경우가 많다. 최 씨를 못견디게 했던 것은 바로 이 '왕언니 문화'였다. 왕언니를 바로 직속상관으로 모셔야 했던 최 씨는 사사건건 그녀와 부딪히는 일이 잦았고, 왕언니는 그녀가 타 회사 출신임을 거론해가며 여자 직원들 사이에서 최 씨를 왕따시키기 시작했던 것. 결국 최 씨는 1년을 못 채우고 본래 근무했던 회사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했다.

◇윤활유가 되는 부드러움

백화점 입사 1년차인 박모(29)씨. 그는 여자 상사를 만나 아주 편안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부서 분위기. 유통업계 특성 상 나이차이가 얼마 되지 않는 낮은 연차의 직원들이 한 부서에 모여있는데다, 여성들의 숫자가 압도적이어서 늘 가족같이 화목한 분위기라는 것.

"회식을 할 때도 '먹고 죽자'는 분위기가 아니라 도란도란 수다나 떠는 분위기인데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신경 써 주는 덕분에 '정말 배려받고 있구나'라는 기분으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일을 배우는데는 여자 상사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남자들은 한 마디로 설명이 끝나버리잖아요. 알아듣든 말든. 여자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고, 알아듣지 못한다 싶으면 직접 매장으로 데리고 가서 자세하게 일러주니 정말 누나와 함께 일하는 기분마저 들었죠."

여성 상사? 꼭 색안경끼고 볼 일 만은 아니다. 여자라서 발휘하는 '부드러움'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윤활유 역할을 해 주는 경우도 많다. 부서원들끼리 생일이나 기념일도 챙겨주고, 가끔 떡볶이 등 간식거리를 사와 나눠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온갖 사소한 것을 다 수다의 재료로 쓰다보니 남의 집 돌아가는 사정 쯤은 훤하게 꿰뚫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김모(35)씨는 "처음에는 성격이 좀 까다로운 것 같아 부담이 컸지만 막상 함께 일을 해 보니 장점도 많았다."며 "남자들이 생각지 못한 부분을 세세하게 짚어내는 능력이 있는가하면, 여성 특유의 똑부러지는 일처리까지 배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