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유정의 영화세상] 슈렉

2001년 개봉된 '슈렉'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먼 먼 아주 먼 옛날 괴물이 살았더래요."라고 말이다. 이 시작은 "아주 먼 옛날 공주 혹은 왕자가 살았더래요."라는 전래 동화의 관습을 뒤엎는다. 도발을 증명하듯 '슈렉'의 주인공은 못생긴 괴물이고 구해야 할 공주는 잠든 척 하는 말괄량이다. 공주의 아름다운 외모는 태양의 축복일 뿐, 해가 지고 나면 그녀 역시 못생긴 괴물로 돌변한다. 단 한 번도 전래 동화의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던 외톨이 못난이들, '슈렉'은 시작부터 전래 동화의 전통을 겨냥하고 있다.

'슈렉'이 전래 동화를 전복하고자 한다는 사실은 몇몇 장면에서 충분히 입증된다. 백설 공주,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 속 공주들은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도 불사한다. 한술 더 떠 왕자들은 음모와 협잡을 꾸며내는 사기꾼에 불과하다. 아름다운 공주와 용감한 왕자의 결합으로 귀결되는 전래 동화 속 공식은 '슈렉' 속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다. '슈렉'은 지극히 현실적인 동화 공간인 셈이다.

'슈렉'이 유발하는 웃음은 익숙한 코드에 대한 위배로부터 비롯된다. 못생긴 공주, 시기 질투 투성이인 캐릭터들은 전래 동화의 엄숙성을 거부한다. 원작이 있을 경우 그 원작의 잘 알려진 코드를 비꼼으로써 웃음과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을 패러디라고 부른다. '슈렉'은 이러한 측면에서 전래 동화의 재발견이자 패러디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슈렉'이 부정하고 비꼬고 있는 전래 동화는 버려야 할 이데올로기에 불과할까? 문제는 오래된 전래 동화 속에 인류가 대물려 온 지혜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아동 정신 분석학자인 부르노 베텔하임의 '옛 이야기의 매력'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대개 전래 동화는 금기와 그것을 위반했을 때의 결과로 진행된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20살이 되기까지 절대 올라가서는 안 될 옥탑이 있다. 그곳에는 오래된 물레가 있는 데 공주가 20살이 되기 전에 그 곳에 올라가 물레를 손댈 경우 공주를 비롯해 성의 모든 사람들이 100년간 잠이 들게 된다. 모든 금기는 깨지기 마련임을 증명 하듯 공주는 꼭 20살 이전에 그곳에 가 물레에 손을 댄다. 성은 잠에 빠지고 시간은 정지된다. 그녀와 성을 깨우는 것은 왕자의 입맞춤, 그 이후 성은 되살아나고 공주와 왕자는 결혼해 행복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이 이야기는 적당한 시기에 이르기 전의 성적 접촉, 사랑이 결국 아이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암시적 형태로 전달하고 있다. 100년 동안의 수면이 상징하는 것은 호기심만큼 성장해야 할 정신적 깊이이다. 몸이 어른이 된다 할지라도 타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데에는 적당한 성숙과 훈련이 필요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암시와 훈련, 그것이 곧 전래 동화의 중요한 효능이다. 사랑하고 섹스하고 배우자를 만난다는 건 일대의 모험이고 존재를 건 도약이다. 전래동화는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 성장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슈렉'은 그러한 과정을 거친 '어른'을 위한 농담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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