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늘길' 칭장철도 개통 1년…티베트 라싸를 가다

1,2년새 집값 6배 급등…은둔의 도시에 밀려든 개발 바람

▲ (사진 위)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조캉사원 광장에는 노점상이 즐비하다. (사진 가운데)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라싸역의 귀빈 접견실은 화려하고 웅장했다. (사진 아래)조캉사원 앞 광장의 사진인화점에서 승려들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현상하고 있다.
▲ (사진 위)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조캉사원 광장에는 노점상이 즐비하다. (사진 가운데)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라싸역의 귀빈 접견실은 화려하고 웅장했다. (사진 아래)조캉사원 앞 광장의 사진인화점에서 승려들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현상하고 있다.

천 년의 시간은 당신과 같고

당신이 바로 천 년일지라도

라싸 강변으로 와

불경을 읽고 있구나

고원은 영원히 그치지 않을 깊은 곳

'시를 읊는 라싸'-뤼쉔

"쿤룬 산맥이 있는 한 기차로는 영원히 라싸까지 갈 수 없다."

미국의 기차 여행가 폴 써루가 한 말이다. 그러나 2006년 7월 1일 그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칭장 열차는 종착역인 티베트 라싸를 향해 첫 출발을 했다. 칭장(靑藏)철도는 중국 칭하이(靑海) 고원과 티베트(西藏)를 오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대 해발고도 5,072m에 평균 4,50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놓인 철도다. 그래서 중국은 티엔루(天路·하늘길)라고도 한다. 1984년 칭하이성(靑海省) 시닝(西寧)에서 거얼무(格爾木) 사이의 814㎞가 개통된 데 이어 2006년 7월 1일 거얼무에서 라싸까지 1,142㎞ 구간이 개통되면서 모든 노선이 완공되었다.

성스러운 땅, 티베트로 가는 하늘길이 열린 것이다.

칭장철도가 개통된 지 1년. 티베트 자치구의 행정수도인 라싸는 1천300년의 신비를 벗고 세계인들이 북적이는 관광도시가 돼 있었다. 철도를 통해 하루 3천500여 명이 라싸에 들어온다. 4편의 기차와 10여 편의 비행기가 하루 6천여 명을 라싸로 실어 나른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여행객들이다. 하루 500여 명이 고작이던 여행객이 10배로 늘어난 것이다. 라싸역은 시내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검은 모래를 그릇으로 엎어 놓은 듯한 산으로 둘러싸인 협곡에 웅장한 현대적인 건물로 지었다.

우여곡절 끝에 귀빈접견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공간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외국 원수를 접견하는 방은 한쪽 벽면에는 손으로 수놓은 포탈라궁의 모습이 자리 잡았고, 천장은 아예 금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이 방 외에도 중국 전통문양과 모던한 풍의 귀빈실이 2개 더 있었는데, 세계 어느 공항의 귀빈실보다 호화로웠다. 하얀 대리석과 최신의 건축자재로 지은 세련된 건물은 거친 색감의 티베트 고성(古城)을 떠올리던 이방인의 첫인상을 뒤엎었다.

장중하고 거침없는 라싸역의 위세에서 티베트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한 입김이 느껴지는 듯했다. 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 맑다 못해 '쨍' 소리가 날 것 같은 파란 하늘이 신비의 '하늘 도시'에 온 것을 실감나게 했다.

'라싸'는 티베트어로 '신의 땅'이다. 해발 고도는 3,650m. 백두산(2,750m)보다 무려 900m나 더 높다. 티베트의 정치·경제·문화·종교의 중심지로 수도이다. 일 년간 총 일조량이 3천 시간이 넘는다고 하니 '태양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싸는 달라이 라마의 겨울 궁전인 포탈라궁을 중심으로 베이징중루(北京中路)에 우체국, 호텔, 신문사, 통신회사, 백화점 등 각양각색의 건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900여 명의 승려가 있는 세라사원과 순례자들이 줄을 잇는 조캉사원, 달라이 라마의 보석의 궁전인 노블링카 등 유서 깊은 유적을 제외하곤 대부분 빠르게 현대화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과거에는 거리 곳곳이 흙길이어서 비가 오면 걸어 다니기조차 힘들었지만 지금은 쭉 뻗은 아스팔트길로 단장됐고, 그 옆으로는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포탈라궁만 하더라도 그 앞을 메우고 있던 흙집과 판잣집들이 모두 헐리고, 잔디밭 정원과 공원이 자리 잡았다. 노블링카 인근에도 재개발이 한창이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신비의 도시 라싸는 어느새 베이징 못지 않은 소비도시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대도시의 슈퍼마켓을 연상하는 6층 규모의 매장 바이이차오스(百益超市)에는 디지털카메라와 양주, 고가의 포도주가 진열돼 있었고, 거리에는 홍콩과 대만에서 수입된 유행가와 뮤직비디오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국형 PC방도 10여 곳 성업 중이었다. 취재차 오전 1시에 들른 한 PC방은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한국 음식점도 2곳이나 생겼다. '아리랑 식당'에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불고기는 물론이고 라면을 먹으러 오는 티베트인도 많았다. 특히 고산병으로 식욕이 떨어진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라싸의 인구는 19만 명. 이제 중국 한족이 티베트 장족의 숫자를 넘어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의 값싼 곡물과 함께 칭장열차로 들어오는 중국인들이 급증한 것이다. 과거 시내를 달리는 인력거꾼의 대부분이 티베트인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인도 상당하다.

칭장철도가 개통되고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부동산값이다. 1, 2년 사이 최고 600%나 급등했다고 한다. 취재 중 만난 한 조선족은 "10년 전 한국돈으로 300만 원이면 살 수 있던 대저택이 지금은 3억 원을 호가한다."고 말했다. 10년 새 100배나 뛴 것이다. 10년 전 라싸에 처음으로 들렀다는 한 대구 기업인은 "당시 대구의 모 주택회사에 500만 원만 투자해 임직원들 휴양소로 이용하라고 제안했다가 무산됐다."며 아쉬워했다.

휘황찬란한 광고판의 떠들썩한 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라싸와 함께 티베트 독립에 대한 절실함도 희석돼 가는 듯했다. 한 중국 기관원은 "달라이 라마도 독립보다는 자치를 원하고 있다."며 "앞으로 갈수록 그마저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의 '프리티베트(Free Tibet)' 운동은 중국과 인도의 관계 개선과 함께 칭장철도를 통해 들어오는 중국의 자본에 속수무책처럼 보였다.

티베트의 역사를 중국의 일부로 흡수하려는 서남공정(西南工程)의 인프라구축 칭장철도는 개통 1년 만에 벌써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돈과 물질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티베트 고유의 종교와 문화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관광지는 순례자보다 이들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버스에서 내리면 돈을 달라는 아이들이 달려드는 것이 동남아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었다. 관광지화되면서 라싸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 돈의 90%는 중국으로 흘러들어간다고 한다.

라싸는 오후 9시가 되어도 잔광(殘光)이 남아 있다. 라싸의 시계가 북경의 시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북경과 라싸의 거리는 4,064km. 칭장열차로 장장 48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진한 코발트빛 하늘과 히말라야의 만년설 신비 속에 묻힌 신의 땅, 티베트. 거기서 느낀 정신과 물질, 종교와 세속이 뒤섞인 라싸는 '북경발 오후 9시'처럼 당혹스럽기조차 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절대주의! 고산병…출발전 이뇨제 도움

칭장철도 개통 후 기차로 여행하던 관광객 8명이 고산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고산병은 산소 희박, 공기 건조로 겪는 생리현상이다. 라싸의 산소농도는 63%. 보통 해발 2,700m부터 두통과 호흡곤란, 식욕부진, 미열, 어지럼증, 피로감 등이 나타난다. 1, 2일이면 증상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적응력이 약할 경우 3~7일 계속되기도 한다. 고산병 증상이 나타날 때는 낮은 지대로 내려오는 것이 가장 좋으며, 산소를 투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뇨제의 일종인 아세타졸아마이드(아이아목스)를 여행 가기 1, 2일 전에 미리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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