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 청소년 해외봉사 현장] 계명대 몽골봉사단 동행기

"땀 흘리고 채운 보람…어학연수 포기 후회 안해"

"준효, 재용, 진환이는 구덩이를 깊게 파고, 상수랑 재영이는 빨리 철봉 조립해야지." "준호야, 모래보다 시멘트가 너무 많이 들어갔잖아."

지난 1일 오후 몽골 울란바토르 성긴하이러헝구 11구역 '국립127유치원'. 울란바토르대학교에서 버스로 20여 분 떨어진 이곳에서는 이국의 대학생들로 인해 작은 역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게르(천막으로 된 몽골 전통가옥)촌으로 둘러싸인 유치원 주변은 흡사 1970년대 대구의 달동네를 연상케 했다. 물 부족으로 돈을 주고 물차에서 양동이로 퍼날라야 했고, 벽돌 건물이나 번듯한 상가는 눈에 띄지 않았다.

3~7세 280명이 다니는 유치원이지만, 2층 건물은 낡고 벽면은 페인트가 벗겨져 보기 흉했다. 놀이터라고는 철 경계망과 정방형으로 둘러싼 고무타이어, 약간의 모래가 고작이었다.

35℃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 속에서 계명대 몽골봉사단 학생 30명이 이 유치원에서 비지땀을 쓸어내렸다. 여름방학을 맞아 해외여행이나 가족 나들이 등을 뒤로하고, 힘든 해외봉사활동을 자원한 것이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참여해 열정이 묻어났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흰 티셔츠는 금방 땟자국으로 얼룩졌다. 삽과 곡괭이가 연방 흙구덩이를 쪼고, 시멘트와 모래는 콘크리트로 다져졌다. 놀이기구도 학생들의 손을 거쳐 모양새를 조금씩 갖춰나갔다.

비록 전문가들은 아니지만, 이들의 작업은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흙 파기, 놀이기구 조립, 매설, 풀 뽑기, 흙 고르기 등의 작업은 짜임새 있었고, 요령 피우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식품영양학과 최기용 식사준비, 간호학과 김남이 응급처치, 컴퓨터공학과 정준효 전산관리, 태권도학과 강우석·이재완 태권도 시범, 디지털영상학과 노나리 비디오 촬영 등 업무 분담도 잘 이뤄졌다.

그네 철봉 시소 등이 하나 둘 자리를 잡으면서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빠 손을 붙잡고 온 코흘리개, 엄마 등에 업힌 꼬맹이들이 밤이 되도록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놀이기구를 만져보거나 그네나 시소에 걸터앉아보기도 하며 신기해했다. 이 동네 벌드(38) 씨는 "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복을 많이 받은 것 같다."며 "아이들이 뛸 듯이 기뻐한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이 사흘째로 접어들었지만, 학생들은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힘든 놀이터 공사지만 내내 웃음꽃을 피웠다.

박재영(경영학 3년) 씨는 "내 손으로 그네도 조립해보고, 콘크리트도 갤 수 있다는 게 뿌듯하다."며 "무엇보다 동네 아이들이 좋아하니 너무 신난다."고 했다. 서정호(광고홍보학 4년) 씨는 "어려운 동네의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한다는 보람을 느낀다."며 "힘든 일을 함께하며 서로 배려하고 도우면서 팀원들과도 너무 친해졌다."고 말했다.

유치원 2층 음악실에는 이진주(컴퓨터공학 4년)·김연주(애니메이션 3년) 씨 등이 내벽 3개 면을 아름드리 나무와 노래하는 아이, 토끼와 다람쥐 그림 등으로 꾸며나갔다. 진한 페인트 냄새와 탁한 공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연주 씨는 "아이들 마음에 들겠어요, 그림 괜찮아요?"라며 "시간만 많으면 건물 외부도 벽화로 채웠으면 좋겠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이진주 씨도 "벽화를 보고 좋아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힘든 줄 모르겠다."고 신명을 냈다.

2일 오후 4시 유치원 앞. 봉사활동 첫날 3, 4명이 모래장난을 하던 이곳에 200여 명의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대학생들의 문화공연을 앞자리에서 보기 위해 서로 옥신각신했다. 댄스, 코믹 차력쇼, 태권도 시범 등이 이어지면서 마을은 온통 축제분위기로 바뀌었다. 흑피리 제작에는 꼬맹이들이, 즉석사진 촬영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줄지어 섰다. 이날 울란바토르 11구역의 오후는 몽골과 한국 대학생들이 어우러져 국제교류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고된 작업과 교실 바닥 숙박, 문화공연 등을 이어가면서 학생들은 서서히 공동체 의식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쌓아갔다. 몽골 주민들과 1주일 동안 어우러지면서 '한국문화 전도사'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몽골 울란바토로에서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 인터뷰-김용일 학생처장

"학생들이 삶의 방향을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해외 지역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해외봉사 활동의 목적입니다."

계명대 몽골 봉사단을 이끈 김용일 학생처장은 "계명대 해외봉사 활동이 10년째를 맞아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 관심으로 대학과 해당지역 사회가 돈독한 관계를 갖는 방향으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학생들은 세계 속의 자아를 발견하고 삶의 태도나 가치를 재인식하기도 한다."며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나 공동체 나눔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큰 소득"이라고 했다.

특히 "대다수 대학의 해외봉사가 한국어 교육, 문화공연에 치우쳐 있다."며 "계명대는 교직원들이 참여한 1%사랑나누기 기금으로 봉사지역마다 현물을 제공한 뒤 이를 바탕으로 노동봉사까지 겸하는 게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봉사지역 선택 기준으로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국가, 도움이 필요한 국가, 낙후됐지만 발전 가능성이 있는 곳 등을 꼽았다. 김병구기자

♠ 인터뷰-젱길마 유치원장

"한국인은 몽골인과 너무 닮아 친밀감이 느껴져요."

젱길마(52·여) 몽골 국립127유치원 원장은 "유치원이 낡고 시설이 부족했는데, 한국 대학생들이 놀이터, 벽화를 조성하고 문화공연까지 열어줘 너무 고맙다."고 감사를 표했다. 국립127유치원은 울란바토르 성긴하이러헝구 11구역에서 유일한 유치원으로, 12년 전에 건립됐다.

유치원 공무원 생활 34년으로 지난 2005년 9월 부임한 젱길마 원장은 "11구역에는 대다수 가난한 집이며, 유치원에 다녀야 아이들이 약 1천 명이 있는데 우리는 280명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시설을 확대하고, 놀이터도 조성해 유치원을 좀 더 발전시킬 계획이었는데, 계명대 학생들로 인해 아이들도 좋아하고 이미지도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흐뭇해했다.

젱길마 원장은 "대학생들이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친절하고 성실했다."며 "앞으로 몽골과 한국이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더 가까워졌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김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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