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테스크칼럼] 신비한 휴가 셈법

아들을 만나보기 위해 상경한 어머니가 다시 시골로 내려가는 날, 아들은 힘들게 사시는 어머니를 생각해 월세를 내려고 미리 찾아둔 20만 원을 어머니 지갑에 몰래 넣어드렸다. 어머니를 배웅한 뒤, 아들은 뜻하지 않은 돈을 발견하고 놀랄 어머니의 모습을 흐뭇하게 떠올리며 책상 위의 책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놀랍게도 돈 20만 원이 들어있었다. '요즘 힘들지? 방세 내는 데라도 보태거라.'는 어머니의 편지도 함께였다.

잡지 '샘터'의 지난해 과월호를 뒤적이다가 발견한 내용이다. 글을 투고한 이 잡지의 독자는 '경제방정식'으로 이 상황을 보지 말라고 덧붙였다. 경제적으로 보면 아들이나 어머니나 20만 원씩을 주고 받았으니 이득도 손해도 없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곱씹어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20만 원을 쓰고 새로 20만 원이 생겼다. 40만원 이득이다. 어머니 역시 아들을 위해 20만 원을 사용하고도 20만 원이 들어왔으니 당연히 40만원의 이득이 생겼다. 두 사람에게 80만 원의 순이익이 발생한 것이다.

순이익 제로와 순이익 80만 원. '신비한 셈법'이다.

지난해 여름, 휴가를 앞두고 신비한 셈법이 빛을 발했다. 모든 사람들이 어딜 갈까 고민할 때였다. 마침 폭우가 쏟아졌고 강원도지역의 피해가 심했다. 강원도는 '여름휴가 3·1·2' 작전을 시작했다. 사흘의 휴가 중 하루는 수해지역 자원봉사에 할애하고 나머지 이틀은 강원도에서 즐기게 하자는 것이었다. 또 기왕 지출할 휴가비용이라면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에게 사용해 작은 희망이나마 주자는 운동이었다.

이 역시 플러스(+)를 부르는 신비한 셈법이었다. 그렇다고 삼겹살을 사들고 바닷가나 계곡으로 가서 2박 3일 지내다 오는 것이 순익 제로의 휴가 셈법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 역시 나름의 셈법은 있다. 그렇게라도 일 년간의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가다듬고 온다면 순익 제로의 휴가는 결코 아닐 것이다.

여름휴가 기간이면 유명인들은 '휴가구상'이란 걸 한다. 한국의 대통령은 국내외 현안들이 쌓였을 때 으레 휴가를 떠난다. 그리고 돌아올 때의 '휴가구상'에 온 언론이 집중한다. 지난 연말 핌 베어벡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20여 일에 이르는 휴가를 떠났을 때도 그가 어떤 계획과 로드맵을 가다듬고 올지에 온 국민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휴가구상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빌 게이츠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일 년에 두 번씩 가진다는 '생각 주간(Think Week)'이란 은둔휴가가 끝날 즈음이면 온 세계가 잔뜩 긴장을 한다. 휴가 이후 그는 늘 세계 IT산업의 트렌드를 뒤집어놓을 만한 '구상'을 발표해왔기 때문이다. 1995년 '생각 주간' 이후엔 새로운 인터넷 브라우저라는 구상을 구체화해 넷스케이프가 주도하던 시장을 마이크로소프트로 재편하기도 했다. 휴가구상이란 것도 잘만 응용하면 특별한 셈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휴가는 왜 갈까? 값비싼 해외여행처럼 나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남들 간다니까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바캉스라는 프랑스어도 '비우다(Vacancy)'는 말에서 생겨났다. 휴가는 마음을 비우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마음을 비우고 당장 휴가를 떠나라고 권할 사람들이 우리나라엔 부지기수다. 대선주자라는 사람들을 포함해 얽히고설킨 오해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더 휴가를 권하고 싶다. 그렇다고 다녀오기만 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가쁜 한 호흡을 줄이라는 뜻이다. 1년여를 쉴 새 없이 달려왔다.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었을 게다. 빌 게이츠처럼 '생각 주간'을 가지고 난 다음 휴가를 끝낼 땐 푹푹 찌는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줄 '구상'들을 한 보따리 안고 돌아오라는 말이다. 순이익 80만 원이란 신비한 휴가 셈법을 기대해서다.

단, 채워오려면 먼저 비우고 떠나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유치할 것 같은 다음 셈법을 명심하고 휴가를 떠나보라. 인터넷서핑을 통해 얻은 셈법이다. '5-3=2', 오해하다가도 세 발짝만 물러서면 이해하게 된다는 셈법이다. '2+2=4', 이해하고 또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셈법이다.

박운석 스포츠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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