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의 금호강변에는 10년 넘게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이 살고 있다. 금호강물이 불어날 때에 대비, 합판으로 평상 형태의 자리를 만들고 대나무를 잘라 만든 기둥에 비닐 천막을 씌워 만든 게 그의 거처였다. 강변에서 산책이나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친구다.
2일 오후 그(69)를 찾았다. "오늘 좀 낚았어요?"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가지고 왔음직한 작은 의자 위에서 그는 말없이 담배 연기를 뿜고 있었다. "어제 비가 많이 와 강물 수위를 조절한다고 물을 빼고 있으니 조금 있다가 (낚시를) 놔야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천막 앞 좌대에는 낚싯대 11대가 놓여 있었다. 진흙이 가득한 세숫대야에는 지렁이가 한가득. 그는 그 속에 담긴 지렁이를 능숙하게 낚싯대에 꽂았고 '쫘르르' 소리와 함께 줄을 던졌다.
12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그로부터 말을 건네받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꽉 다문 입술, 정상인의 두 배는 됨직한 검게 그을린 팔뚝과 깊은 문신, 단단한 가슴. 범상치 않은 기(氣)가 느껴졌다. 아무 말도 않은 채 2시간이 흘렀다.
작은 메기 한 마리를 건져 올릴 때 소주와 안주를 내밀며 다시 말을 걸었다. "어르신을 위해 술을 받아왔습니다. 한잔 하시죠?" "이거 참, 젊은이에게 신세를 끼치고…."
술 기운에 그는 말문을 열었다. 달서구 대곡동의 한 아파트에 그의 아내가 살고 있다고 했다. 개미집처럼 붙어 있는 그 공간이 싫어 나와 이곳에서 살게 됐다는 것. 그는 대구초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라고 했다.
손바닥만한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낚싯밥을 던져 고기가 물기를 바라지. 뉴스가 전부 그 모양이야. 잡아도 그만, 잡지 않아도 그만인 사람이 미끼를 던지면 그것만 바라보고 고기가 덥석 문단 말이야. 그런데 (미끼를) 문 그는 죄인이 되고 던진 사람은 그걸로 그만인 거야." 세월이 묻어나는 듯한 얘기였다.
그는 평생을 공사판 인부로 살아왔다고 했다. 외동아들(46)은 서울에서 의류사업체 사장으로 있다는데 사는 게 그런대로 넉넉해 집도 아들이 사줬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돈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필요한 것만 사서 쓸 수 있을 만큼 벌면 되는 거지. 너무 많은 것을 손에 쥐려고 아등바등이야."
그의 터전은 복잡한 도심 속의 작은 자연이었다. 여름이면 뒤편 언덕에서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고 겨울이면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고 했다.
그는 공사판에서 일당 10만 원을 벌면 다 쓸 때까지 세월을 낚는다. 그 돈으로 소주를 사고 잡아놓은 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인근에 흩어져 살고 있는 노숙자들을 끌어 모은다. 작은 베풂이지만 그 기쁨은 크다. "또 돈이 다 떨어져 내일은 구미 공사장에서 일당치기 해야 해. 내일은 여기 와도 내가 없어. 하지만 낚싯대를 놓고 갈 테니 잡으면 당신 거야."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는 그는 득도한 것처럼 보였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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