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는 친숙하다.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도 갔었고, 대구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가족끼리 친구들끼리도 자주 찾아갔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경주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여러분은 경주를 잘 아시나요?
수학여행 때 고생했던 기억이나 보문단지에 있는 콘도와 호텔에서 열린 수련회에 참석했던, 그저 그런 위락지라는 느낌밖에 안 든다. 경주는 천년왕국의 수도였다. 신라는 잊혀진 왕국이지만 경주 어느 곳을 파헤치더라도 유물이 나올 정도로 여전히 경주는 신화의 땅이다.
자동차를 타고 휑하니 갔다가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만 보고서는 경주를 다 본 것처럼 "경주에는 더 이상 볼 게 없다."는 식으로 생각해온 것이 사실이다. 스쳐 지나가는 유적관광으로는 경주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전설과 설화는 그 얼마나 많은가. 최소한 교과서에 나오는 신라문화의 정수만이라도 차분하게 다시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는 경주에 도착해서 자동차를 버리고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장마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한여름 뙤약볕이 강하더라도 땀흘린 만큼 얻어갈 수 있는 것이 경주 유적체험여행이다.
두 가지 방식의 경주여행을 추천한다. 자전거여행과 달빛여행이 그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 경주만큼 좋은 곳이 없다. 경주시내는 온통 유적 천지다. 웬만한 유적은 자전거로 30분 이내 거리에 다 있다. 한낮의 태양을 조금이라도 피하려면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는 것이 좋다.
경주시내와 외곽의 자전거도로 길이를 모두 합치면 100㎞ 정도 된다. 시내 유적지만 자전거로 다녀도 충분하다.
자전거대여소는 고속버스터미널 앞과 대릉원 주차장, 경주보문단지, 경주역 앞 4군데에 있다. 1일 대여료는 5천~7천 원이다. 하루 코스로는 시내구간이 가장 적당하다. 기자는 경주역-대릉원(천마총)-첨성대-계림(반월성)-경주 교동 최씨 고택-경주박물관-분황사-황룡사지-임해전지(안압지)코스를 둘러봤다.
경주 시내 지도는 관광안내소에서 무료로 구할 수 있다. 또한 각 유적지에서는 문화유산해설사들의 해설을 청해듣는 것이 좋다.
◆경주자전거여행
대릉원 입구에 있는 자전거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수학여행 때 온 천마총은 어느새 대릉원으로 바뀌어 있었고 안내판에는 '황남리 고분군'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곳 황남리 고분군에는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비롯한 신라 초기의 무덤 30여 기가 산재해 있다.
인근 황남동 주택가도 헐려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 이제서야 문화재에 대한 경주시의 인식이 달라진 걸 피부로 느꼈다. 이 고분군에서 유일하게 들어가 볼 수 있는 천마총 안은 황량했다.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돌무지 덧널무덤'이지만 어느 왕의 무덤인지를 알 수가 없다.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 그림이 출토돼, 천마총이라고 불린다는 것만 알고 나온다.
첨성대는 대릉원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선덕여왕 때 축조된, 현존하는 동양 최고(最古) 천문대다. 자전거를 타고 첨성대 앞쪽의 계림과 반월성으로 향했다. 계림은 멀리서 보기에도 참 잘생긴 숲이었다.
계림 안에는 사당도 있다.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유서깊은 곳이다. 숲 여기저기에 경주시민들이 나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반월성은 토성이다. 아직까지 반월성의 옛 궁궐이 복원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신라유적이 아닌 유교 유적도 가까이에 있었다. '요석궁'이라는 유명한 음식점 왼쪽 골목에 '경주 최부잣집'과 경주 교동법주를 만들고 있는 교동 최씨 집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경주 최부잣집은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표하고 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말라.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 재산을 늘리지 말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며느리는 시집을 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이 여섯 가지가 300년 넘게 만석꾼을 이어온 경주 최부잣집의 가훈이라고 했다.
최 부자는 이 집을 대학에 기증했다. 그래서 지금은 영남대박물관의 최용부 씨가 살면서 관리를 맡고 있었다. 큰 사랑채 오른쪽에 흉년이 들었을 때 사방 백 리를 구휼하기 위해 800석의 곡식을 쌓아뒀다는 곳간이 보인다.
분황사와 황룡사지는 선덕여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다. 분황사(芬皇寺), 향기로운 임금의 절이라는 이름에서도 선덕여왕의 절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있는 3층 석탑도 목탑으로 이행되기 직전의 전탑 형식이어서 더욱 그랬다. 문화유산해설사는 사리함에서 출토된 구슬과 금·은 바늘은 여왕의 유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자전거 답사는 임해전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임해전지 주변은 온통 연꽃천지다. 연꽃이 한창이라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기타 자전거코스는
경주고속터미널-서천교-김유신장군 묘-오릉-나정-양산재-포석정-삼불사-고속터미널로 가는 외곽 코스도 괜찮다.
보문단지에서 출발해 천군동 삼층석탑-설총묘-진평왕릉-황복사 삼층석탑-보문단지로 되돌아오는 코스도 추천한다.
보문단지-명활산성-북천자전거전용도로-구황교-헌덕왕릉-석탈해왕릉-굴불사지 사면석불-백률사-황성공원 코스도 있다.
♠ 맛집: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배가 출출하면 도솔마을(054-748-9232)과 숙영식당(054-772-3369) 한정식을 맛보자. 특히 도솔마을 한정식은 한 상 가득 깔끔하게 나온다. 경주지역 문인들이 즐겨찾는 명소다. 1인분 7천 원.
♠ Tip: 각 유적지마다 입장료를 받는다.
대릉원은 1천500원(성인 1인 기준), 첨성대는 500원, 분황사는 1천300원, 오릉은 500원, 임해전지는 1천 원이다. 그밖에 불국사와 석굴암은 각각 4천 원, 기림사는 3천 원, 국립박물관은 1천 원이다. 계림과 반월성은 무료.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주차요금도 있다.
경주·최윤채기자 cychoi@msnet.co.kr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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