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마을에 들어서면 옛 동무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나올 것 같아요. 고향을 찾아 형제와 핏줄을 만났으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9일 상주 화동면 어산리 마을 입구에 다다른 강일출(81) 할머니는 한동안 마을 뒷산만 바라봤다. 지난 1943년 꽃다운 16살 나이에 '군화 끈 만드는 공장에 일하러 가야 한다.'는 윽박에 못 이겨 일본 순사를 따라 나선지 어언 65년여 만에 다시 만난 마을 뒷산이 강 할머니를 꼬옥 안았다. 할머니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뒷산과 헤어져 골목길을 돌자 손위 언니인 강일복(84) 할머니가 12남매 중 막내인 강 할머니를 다시 품에 안았다. 둘은 꺼이꺼이 소리 내며 울었다. 반편생을 생이별로 지내야했던 자신들의 인생이 너무 서러웠을 터. 언니 강일복 할머니는 "막내를 그렇게 보내고 온 식구들이 며칠 밤잠을 설치며 언제쯤 돌아올지 몰라 항상 대문을 열어놓고 있었다."며 "부모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막내를 걱정하시며 편안히 눈을 감지 못 했다."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강 할머니는 이어 둘째 오빠의 아들 강준철(62)씨 등 3명의 친조카들을 만나 핏줄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강 할머니는 고향을 떠난 이후 중국 흑룡강성 일본군 부대에 강제로 끌려가 온갖 고역과 치욕을 겪어야 했다. 1945년 일본군이 패망한 이후에도 강 할머니는 가족들과 고향 주민들을 찾을 용기와 엄두를 못 내고 가슴에 응어리만 쌓아둔 채 평생을 살아왔다.
할머니 가슴에 진 응어리를 풀어준 이들 형제의 만남은 경기 하남지역 봉사단체인 팔도한마을대동회 도움으로 이뤄졌다. 팔도한마을대동회 신우식 회장은 "나눔의 집 광복절 행사에서 할머니들의 소원이 고향방문이란 걸 알고 추진하게 됐다."며 "이 행사가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진실규명과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상주·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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