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넘쳐나는 유사휘발유] (하)허세·고유가가 빚어낸 불법

큰 車는 타고싶고 기름값은 겁나고…

▲ 매주 대구에서 충북으로 출장을 가는 개인사업자 이모 씨는 승용차에 시너통을 몇개씩 싣고 다니면서 직접 시너를 넣고 있다.
▲ 매주 대구에서 충북으로 출장을 가는 개인사업자 이모 씨는 승용차에 시너통을 몇개씩 싣고 다니면서 직접 시너를 넣고 있다.

"이 차는 시너가 잘 먹어요?"

요즘 중고차 시장에서 딜러들이 고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젊은 고객일수록, 중대형 승용차를 찾는 고객일수록 시너 사용 여부를 차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많다.

대구 달서구에서 3년째 중고차 딜러를 하는 김모(32) 씨는 "시너가 잘 받는 승용차는 연식, 주행거리에 관계없이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시너 적합성 여부가 중고차 가격을 좌우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중고 중·대형은 시너 승용차?

"오래된 뉴그랜저, 다이너스티 승용차 상당수는 시너를 쓴다고 보면 됩니다."

한 중고차 딜러는 "중대형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20대, 30대 초반 젊은 사람들은 거의 100% 시너를 넣는다."며 "이 때문에 젊은 층이 3, 4년 전보다 중대형 승용차를 사러 오는 경우가 3배 이상 늘었다."고 했다. 중고차 시장에서는 시너가 잘 맞는 현대자동차에서 생산된 중대형 차량이 인기를 끌고 있다.

경북 경산시 진량공단에 근무하는 박모(29) 씨는 얼마 전 소형 차량을 팔고 중고 마르샤 2.5 승용차를 샀다. 박 씨는 "몇 년만 시너를 넣으면 기름값으로 차값을 뽑을 수 있다는 딜러의 권유에 따라 이 차종을 골랐다."고 말했다.

10년 이상 된 중고 중대형 승용차를 300만~800만 원에 구입해 시너를 넣고 타는 운전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경제력이 되지 않는데도 고급 승용차를 타고다니고 싶은 허세 풍조와 고유가 현상이 맞물려 빚어지는 비뚤어진 풍속도다.

▶나쁜 줄 알지만 싼 맛에…

일주일에 두세 번씩 대구에서 충북으로 출장을 가는 개인사업자 이모(32) 씨는 2년간 주유소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그는 아예 시너 4통을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기름이 떨어지면 직접 시너를 넣고 있다. 이 씨는 "하루에 몇 백㎞씩 주행하는데 휘발유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며 "사고시 폭발 위험이 있겠지만 주위에 나 같은 사람이 많다."고 했다.

시너 사용의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비업소마다 시너를 쓰다가 엔진 고장으로 찾아오는 차량이 적지 않다. 대구 대본정비업체 정순갑(55) 전무는 "시너는 휘발유보다 발열량이 많아 엔진의 피스톤, 헤드 부분에 마모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중고차 딜러들도 중대형 차량 판매 후 시너 사용으로 인한 엔진 고장이 잦아 애프터서비스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강철구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홍보이사는 "국민소득에 비해 휘발유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운전자들이 엔진고장, 환경오염 등 시너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쓰고 있는 것 같다."며 "단속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유류세가 인하돼야 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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