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서북부 해안 지역을 끼고 있는 옛 나라 지역인 이시카현 고마츠시. 이곳에는 718년에 세워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여관인 호시료칸(法師 旅館)이 자리 잡고 있다. '천년 기업'을 이미 오래전 뛰어넘은 호시료칸은 일본 장수 기업의 전형적인 경영 철학을 간직한 곳이다.
"창업자의 46대 후손입니다. 몇 년 뒤 아들에게 다시 료칸(온천장)을 물려주면 47대 손이 운영하게 되는 셈이죠."
정확히 1천289년의 역사를 가진 호시료칸의 대표인 호시 젠고로(善五郞·72)씨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창업자의 46대손'이라고 적힌 명함을 먼저 내밀었다. 전 세계에서 장수 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인 일본, 하지만 '천년 기업'은 몇 개에 불과하다.
호시료칸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젠고로 씨가 밝힌 기본 조건은 우선 뛰어난 환경.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온화한 기후를 갖고 있고 3m만 파면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양질의 온천수가 나온다. 전통적으로 지역 권력자들이 '호시료칸' 보호 정책을 펴왔고 주변 주민들의 끊임없는 애정도 또 다른 바탕이 됐다. 그러나 온천장이 많은 일본에서 이러한 조건은 평이한 전제에 불과하다.
일본 전통의 가족주의 경영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장자 계승 원칙'과 집안 대대로 내려온 '겸손의 미덕'이 호시료칸의 역사를 가능케 했다.
"우리 집안은 '물로부터 배워라', '스스로 깨달아라'는 두 가지 가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변 온도에 따라 뜨거워지고 차가워지는 물의 특성처럼 주변에 순응하고 살아라는 뜻이고 두 번째는 말 그대로 스스로 능력을 키워라는 말입니다."
젠고로 씨는 "창업자 할아버지의 이름도 호시 젠고로로 경영권을 물려받게 되면 동시에 이름을 물려받게 된다."며 "나머지 아들은 부인의 성을 따르게 된다."고 했다. 80년 부친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젠고로 씨도 법원에서 개명 신청을 해 부친의 이름을 따랐다. 물론 일본 전통에 따라 사위나 양자가 기업을 물려받아도 자연스럽게 '호시 젠고로'란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장인의 후계자가 된 사위는 일본말로 '무코요오시'라 불리며 가족 경영을 원칙으로 하는 일본 기업들의 생명력이 되고 있다. 경영 능력이 없는 아들을 대신해 '무코요오시'를 영입, 가문의 혈연보다는 기업 가문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전통 제도로 호시료칸의 45대 호시 젠고로도 사위였다.
"저도 그런 경험을 했지만 창업자의 이름을 물려받게 되면 딴 일에 신경 쓰지 않고 호시료칸의 역사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만 몰두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
현재 호시료칸은 둘째 아들과 사위가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두 명 중 한 명이 대표가 되는 순간 '47대 호시 젠고로'란 이름을 갖는다.
요즘도 호시료칸은 고위 정치인과 연예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최고의 명문 '료칸'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1천300년 여관'이란 이름값만이 호시료칸의 전부는 아니다.
이곳의 객실 수는 웬만한 호텔과 비슷한 70개, 종업원 수가 130여 명에 이른다. 한 해 이곳을 찾는 손님 수가 4만 명에 이르며 경기가 좋았던 10년 전에는 7만여 명의 방문객이 끊이지 않던 일본 내 대표적 온천장이다.
젠고로 씨는 "전통 건물과 서비스 방식으로 온천장을 운영하는 곳이 이제 일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라며 "종업원이 함께 숙식을 하지 않는 것을 빼면 호시료칸은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른 점이 없다."고 했다.
몇 차례 화재를 겪은 탓에 건물 원형은 변했지만 200년 이상 된 다도실과 건물 현관, 수령 500년이 넘은 나무로 채워진 정원은 호시료칸의 또 다른 경쟁력.
특히 철저한 서비스 정신은 일본 내 유명 기업들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기도 한다.
종업원이 새로 들어오면 최우선적으로 교육받는 것이 손님의 입장에서 응대하고 지위고하를 떠나 호시료칸에 들어온 손님은 모두 같다는 내용. 일흔이 넘은 나이에 한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젠고로 씨는 "중국 손님이 늘면서 지난해 5명의 대만 유학생을 새로 채용했다."며 "조상 대대로 손님에게 최선의 봉사를 하는 것이 호시료칸의 빼놓을 수 없는 경영 철학"이라고 했다.
오랜 전통과 가문에 대한 자부심, 성실한 근로 윤리 등의 바탕이 있는 이상 호시료칸의 '또 다른 천년'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호시료칸은
718년 불교 승려 타이초오 대사가 옛 도읍 나라 인근의 백산(하쿠산)에서 수행을 하던 중 인근 마을에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온천이 있다는 하늘의 계시를 받고 제자인 사사키리 젠고로를 시켜 만든 온천장. 17세기 일본 내 최고 건축가인 코보리 엔슈우의 정원 설계와 역대 천황을 비롯, 8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후쿠이 겐이치 등의 방문 등으로 유명세를 탔다.
호시료칸 사장인 젠고로 씨는 "여관의 상징물이 불국사에서 발견되는 기와 문양과 비슷하며 초창기 건물은 백제에서 건너온 목수들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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