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야기를 들어야 잠을 자겠다고 늦둥이 딸이 졸라댑니다. 할 수 없이 길게 말을 끌면서 뜸을 들입니다. 옛날에, 음, 옛날에 말이지,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살았어. 축축한 참나무 톱밥 속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자랐대.
비가 오면 땅거죽 가까이 올라오고, 날씨가 쨍쨍하면 땅 깊숙이 축축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 외엔 사방에 흩어진 먹잇감 속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자고 먹고 그렇게 했대. 자꾸 몸집이 뚱뚱해져 갔지만 "어차피 나중엔 번쩍번쩍 멋진 모습으로 어른벌레가 될 건데" 하며 게으르게 지냈어.
그러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커다란 몸이 나무뿌리나 돌 사이에 끼여서 자주 긁히고 피가 났대. 처음엔 힘들었지만 상처가 아문 자리 주위로 점차 피부가 무뎌지고 딱딱해져서 나중엔 작은 벌레가 깨물어도 아프지 않고 춥거나 주위가 건조해져도 괜찮은 거야.
그래서 귀찮게 땅속 위 아래로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고 성가신 벌레걱정도 없어서 애벌레는 그런 자기 모습이 좋았단다. 이리저리 쏠려다니는 땅속 다른 친구들을 오히려 불쌍하게 여기기까지 했지. 단단한 껍질이 이제 스스로를 지키는 훌륭한 무기라 생각되었고 이 모습 그대로 번데기로 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되었어.
어차피 어른벌레가 되기 위해 몸이 딱딱하게 되는 번데기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말이야. 사실 몇날 며칠 온몸을 구부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좁은 번데기 방에서 스스로를 가두어야 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자 곁에서 잠자던 친구들은 하나씩 껍질을 벗고 어른벌레가 되어 땅위로 나갔지. 그런데 애벌레는 그렇지 않았어. 오히려 겉뿐만 아니라 몸속까지 점점 굳어만 갈 뿐 처음 그대로였지. 자기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껍질은 조그만 벌레들의 자극에도 쉽게 바스라지고 갈라졌어.
그러다 어느 날 애벌레는 그만 죽어버리고 만 거야… 응? 아빠, 그럼 우리 집 장수풍뎅이 애벌레 죽은 거야? 그제야 눈치를 챈 듯 딸이 눈을 똥그랗게 뜹니다. 아빠가 알려주려는 뜻은 하나도 모르고 오직 에둘러 말한 제 애벌레의 죽음에만 귀가 솔깃한 딸이 그러나 곧 포근한 흙에 안기듯 잠속으로 떨어집니다.
딸을 토닥거리며 나는 나를 지킨다는 논리로 무뎌진 내 마음과 굳어진 생각들을 돌이켜봅니다. 언젠가는 보란 듯이 멋진 어른벌레로 탈바꿈하리라고 감추어둔 뜻과 욕망에 대해서도 생각하다 보니 나의 잠은 거꾸로 박힌 뿌리처럼 도통 올 생각을 않습니다.
조현열(아동문학가·신경외과전문의)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