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6일)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참 대단한(?) 기록이 하나 수립됐다. 13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1만 패 팀이 탄생한 것이다.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메이저리그에 참가한 지 125년 만에, 절반이 넘는 72시즌에서 패배가 승리보다 많았고, 5년 연속 100패 이상, 시즌 23연패 등 깨기가 거의 불가능한 기록들을 남기며 거둔 결과다. 2위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즈가 9천100대 패배에 머물고 있으니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1만 패 동료가 생길 듯하다.
놀라운 것은 홈구장에서 치러진 이날 경기가 만원을 이뤘다는 사실이다. 8회까지 10대 0으로 무기력하게 끌려가는데도 자리를 뜨는 관중이 거의 없는 것도 이채로웠다. 언뜻 지나는 TV 화면에서 한 젊은 관중은 '당신들은 실패한 게 아니다.'라는 포스터를 맹렬히 흔들고 있었다. '패배를 바라보는 우리와 다른 시각'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우리나라, 특히 교육 분야로 고개를 돌리면 가장 시급하게 고쳐야 할 문제가 바로 '패배를 보는 시각'이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대학입시는 두말할 것도 없다. 경쟁이 있는 곳은 유치원이든, 초등학교든, 사설학원이든 가리지 않고 패자와 승자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너무나도 만연해 자기 아이에게조차 아무렇지 않게 "너는 아무리 해도 안 돼." "나는 네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라고 퍼붓는 게 우리네 일상이다.
어렵게 반수를 선택했다는 한 지역 대학 1학년생을 만났다. 그는 일단 붙고 보자는 마음에 적성도 맞지 않는 대학에 진학한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후회했다. 올해부터 내신 중심으로 입시제도가 바뀌니 한 번 실패하면 성공하기 힘들지 않을까 겁났다는 것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한 번으로 한 학기의 모든 배움과 공부에 낙인을 찍는 내신 성적에서, 한 번의 시험으로 인간의 등급까지 매겨버리는 수능시험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내신과 수능 반영 방법, 비율 따위를 두고 교육부와 대학이 벌이는 힘겨루기는 죄악으로 불려 마땅하다.
성인인 부모들조차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고, 실수를 가장 너그럽게 감싸줘야 하는 게 청소년기다. 생각이 거기에 미친다면 격려와 위로를 통해 패배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잠재능력을 무럭무럭 키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시급한지 이해될 것이다.
'패배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분수를 알고 제자리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나마 세상은 참을 만하다.'(위대한 패배자 中)는 볼프 슈나이더의 말은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한다.'는 명제에 빠져 사는 우리에게 시각의 변화를 촉구한다. 1만 패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팬이 있음으로 해서 위대한 패배자가 된 필라델피아 필리스처럼.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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