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이대흠 作 '이동식 화장실에서'

이동식 화장실에서

이대흠

사각의 공간에 구더기들은

활자처럼 꼬물거린다

화장실은

작고 촘촘한 글씨로 가득 찬

불경 같다

살아 꿈틀대는 말씀들을

나는 본다.

짐승들이 똥 닦는 걸 본 적이 없다. 말이, 소가, 낙타가 볼 일을 보고 뒤를 닦는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다. 똥이 더럽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럴까? 똥이 더러운 걸까. 똥은 그 자체로는 더러운 게 아니다. 가래도 몸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더럽지 몸 안에 있을 때는 더러운 게 아니다.

개, 고양이 따위 짐승들의 배설물은 짝을 유혹하기 위해 매혹적인 후각신호를 숨긴다. 그런데 왜 인간만은 악취라고 느끼게 되는 걸까. 프로이드 영감 말에 따르면, 성적 억압이 거기에 스며들기 때문이라는데. 사실여부야 나중에 따져볼 일이고 시인이 던진 수수께끼부터 풀어보자.

구더기가 왜 불경 말씀인가. 불교가 내세우는 진리는 순환론적 세계관. 세상 만물은 緣起(연기)의 법칙 안에서 생멸을 거듭한다. 사람이 배설한 똥이 거름이 되고 거름은 채소가 되어 사람의 몸으로 바뀐다. 이게 곧 부처님의 말씀. 그런데도 똥이 더럽다고? 진짜 더러운 건 썩지 않는 플라스틱. 천년만년 썩지 않는 비닐조각. '똥'을 굳이 '대변'이라고 불러야 고상해진다고 믿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인식이다.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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