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은 계절적으로 힘든 기간에 주로 가정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취미 생활이나 특기·적성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휴가여야 한다. 공부 측면에서 본다면 방학은 여러 과목 중 특히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알아서 보충할 수 있는 자율 학습이 허용되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불행하게도 요사이 학생들은 방학이란 계속 학교에 나가면서 오후에만 다소 자유가 허용되는, 단축수업을 받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성적의 부담을 느낀 학생들이 시험지를 몰래 빼내고, 심지어 학원 원장이 학교 컴퓨터를 해킹하여 문제지를 훔치는 사건 등이 기말시험 기간에 연이어 발생하여 우리 모두를 착잡하게 했다. 이 모든 사건들은 시험과 경쟁만 있고 진정한 자기 개발과 인간 교육은 없는 우리 교육의 우울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과거 부모들이 누렸던 방학의 여유로움은 오간데 없다. 부모의 극성은 학생들이 무엇을 자발적으로 시도하고 도모해 볼 기회 자체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요즘의 아이들은 모든 것을 타의에 의해 수행하다보니 어떤 것에 끝까지 천착해 들어가는 치열함을 훈련할 겨를이 없다. 방학을 시작하며 한 번쯤 생각해 보자. 2학기에 보다 활기찬 생활을 기대한다면 학원과 과외에 매달리기 보다는 운동을 하고 독서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대자연과 호흡하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독서를 통해 진한 감동을 경험할 때 풍부한 정서와 긍정적 사고는 배양되며, 여러 다양한 도전에 치열하게 대결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게 된다.
최근 어느 독자로부터 부모와 자녀가 방학을 맞이하여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 추천해 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고려대학교 출판부)'를 권하고 싶다. 여행을 갈 때 휴대하기에도 좋은 얇은 책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충고하고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겐 단 한 가지 길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 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 심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릴케가 시인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자신의 작품을 남에게 평가 받고 싶어 하기 전에 간절히 쓰고 싶은 그 무엇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 보라고 충고하는 대목이다. 릴케는 간절한 소망과 열정, 치열함을 강조하고 있다. 공부를 비롯한 모든 곳에서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릴케는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보잘 것 없어 보이지 않으며,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남에게 보이려는 글도 쓰지 말고 소박한 자연으로 눈을 돌려 보라고 당부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며 깊게 숙고하라고 충고한다. 릴케의 편지와 함께 방학을 시작하며 온 가족이 내면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좀 더 시간을 투자해 보자.
윤일현(교육평론가·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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