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 터치)공익 사업장 노동관계법 개정 논란

파업때 필수업무 유지…노사 모두 반발

지금까지 우리는 사용자와 노동조합의 대립 때문에 병원이나 철도, 항공 같은 사업장에서 파업이 일어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서비스가 중단되면 불편이 워낙 커 누구 잘못이냐를 따지기보다 불만부터 터뜨리기 일쑤였다. 노조는 노조대로 공익성 때문에 파업이나 단체행동권에 제약을 많이 받는다고 호소해왔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처럼 공익성이 큰 사업장에서 파업이 한결 자유로워지는 대신 국민 불편을 막기 위해 파업 때도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업무가 지정되고 대체근로도 허용된다. 정부는 국민과 노사를 모두 고려해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어느 쪽도 온전히 만족시키기는 어려운 문제여서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 변화-파업은 허용하되 불편 최소화

법안의 대상이 되는 사업장은 현행 철도·도시철도, 수도, 전기, 가스, 석유, 병원, 통신, 우정사업, 한국은행 등에서 내년부터는 항공운수, 혈액공급사업 등까지 확대된다. 필수공익사업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이런 사업장들은 지금까지 노사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15일 동안 파업을 금지할 수 있는 직권중재 때문에 파업권이 제한돼왔다. 반면 현행 노동법으로는 파업 중인 사업장에 대체근로를 시킬 수 없어 불법 파업-국민 불편의 악순환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개정안은 이를 고쳐 직권중재를 폐지, 일정한 절차만 거치면 파업에 들어갈 수 있게 한 대신 파업 참가자의 50% 이내에서 대체근로를 허용했다. 또 파업 때도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필수업무를 지정해 국민 불편을 줄이도록 했다. 필수업무의 유지 수준과 대상 직무, 인원 등 구체적 내용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 쟁점-공익 보호냐 노조 죽이기냐

정부는 필수유지업무의 범위를 제시하면서 생명·건강·안전에 관련된 서비스는 엄격하게, 일상생활에 불편을 초래하는 정도의 서비스는 보다 유연하게 설정하되 쟁의권과 공익의 조화를 꾀했다고 밝혔다.(노동부 발표) 이에 대해 노사 모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계의 입장만을 고려해 필수유지 업무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어 필수유지업무의 본래 취지를 몰각시킬 우려가 있다."며 더욱 포괄적으로 규정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필수유지업무 제도는 범위와 선정기준 등에 있어 노동기본권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 외에 어떠한 긍정적 의도도 없다."며 "파업권을 원천 봉쇄하는 악법"이라고 공격했다.

필수유지업무의 인력 규모와 수준 등을 노사 협상을 통해 결정하도록 한 점은 노사 마찰을 예상하게 하는 부분이다. 노조는 필수유지업무 담당 인원을 가급적 줄이려 하겠지만 사측은 늘리려 할 게 분명하다. 파업 강도를 결정하는 핵심인 인력 규모를 두고 누구도 선선히 양보할 리 없다. 노사 합의가 안 되면 노동위원회가 결정한다고 하지만 빠르고, 뒤탈 없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대체근로 도입도 노동계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대체근로를 허용해 파업을 해도 큰 문제가 없다면 파업의 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노조의 존립 기반을 흔든다. 민주노총은 "필수유지업무 뿐만 아니라 긴급조정 및 강제중재, 대체 근로 허용 등으로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권은 3중의 제약을 받는다."며 "정부가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화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 전망과 대책

개정안에 대한 노동계의 반대가 워낙 분명해 시행까지 어려운 길이 예상된다. 노사 간 협상도 제대로 이뤄질 것 같지 않다. 때문에 사전에 정부가 충분하게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을 거쳐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현 상태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라느니,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노동위원회가 결정한다느니 하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긴다면 비정규직보호법의 경우처럼 반드시 시행과 동시에 파열음을 내게 돼 있다. 사전에 충분한 토의를 거쳐 확실하게 지정하고 넘어가는 게 개정안의 원만한 시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신문 사설)

그러나 입장에 따라 공익을 보호해야 하느냐,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느냐 가운데 어느 쪽을 우선할지는 엇갈린다. 학생들로서는 신중하면서도 일관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공익을 우선하는 쪽은 더욱 엄격한 파업 제한과 노조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요건은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필수유지업무를 좀 더 광범위하게 규정하는 것은 물론 대체근로도 전면 허용해 무분별한 파업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노동계는 공익사업장의 파업권 제한이 막무가내식 파업이 자초한 결과라는 반성에서 이를 노동운동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신문 사설)

필수유지업무나 대체근로 등으로 인해 노동기본권이 크게 제약된다는 쪽에서는 합리적인 조정을 위한 노·사·정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노조는 아예 파업을 못하거나, 해보았자 사용자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사용자와 맞설 무기가 없는 노조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노동부가 노조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단체행동이라면 무조건 틀어막는 게 최선이라는 구시대적 발상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공공의 이익과 노동자의 기본권은 절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의 직권중재 대체안은 절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는 이제라도 진정한 절충안 마련을 위해 노동계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신문 사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 병원, 철도 등 공익사업장의 업무 가운데는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게 많아 대체근로를 투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업무를 맡겼다가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습니다. 공익사업장의 파업 때 대체근로는 어떤 범위에서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 항공 분야가 공익사업장에 포함된 데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 외국 항공사의 국내 진출이 확대돼 공익성보다 영리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데 공익사업장에 넣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과 생명, 안전을 다루는 분야라는 반박이 맞섭니다. 개정안에 포함된 분야들 각각이 어떤 공익성을 갖고 있는지, 배제는 어려운지 알아봅시다.

공익사업장 문제와 함께 현재 노동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7월1일부터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노동 현장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뉩니다. 병원이나 은행의 경우 정규직들이 허리띠를 졸라맨 대신 그 여유자금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있습니다. 반면 현재 파업과 점거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이랜드와 같은 유통업체에서는 비정규직 계약 해지나 용역업체 위탁 등으로 인해 노사 갈등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그림은 본사 김경수 화백이 10일자 매일신문에 게재한 만평입니다. 그림을 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의 필요성과 문제점 ▷비정규직법 시행이 불러온 상황 ▷기업과 노조, 노동자의 입장 등에 대해 알아보고 ▷내가 사장이라면 ▷내가 노동자라면 ▷내가 노동부장관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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