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바둑에 푹 빠졌어요" 어린이 기사들의 경연

▲ 바둑은 집중력, 암기력 등 두뇌개발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1일 서부교육청교육장배 바둑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박정현 군과 한성욱 군은 바둑이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 바둑은 집중력, 암기력 등 두뇌개발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1일 서부교육청교육장배 바둑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박정현 군과 한성욱 군은 바둑이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지난 11일 오후 대구시민체육관에서 열린 서부교육장배 바둑대회장. 400여 명의 초·중학생이 참가했지만 시종일관 조용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TV나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을 법한 아이들이 이렇게 정적인 바둑에 빠져든 이유는 뭘까. 김동욱 바둑교실협회 대구시지부장은 "집중력, 수리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최근 어린이 바둑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바둑은 수학적 감각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산만한 아이들에게 차분함을 길러준다는 것. 여러모로 공부와 닮은 면이 많다.

이번 여름방학, 최고의 두뇌개발 게임이라는 바둑에 한 번 빠져보면 어떨까. 대회장에서 만난 어린 기사들로부터 바둑과 공부에 대해서 들어봤다.

▶프로기사를 꿈꿔요

대구 문성초교 3학년 박정현(9) 군은 이날 대회 초등 유단자부에 출전, 20여 명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1등의 영예를 안았다. 흑을 잡고 5학년 형과 치른 결승전은 불계승. 대회를 2연패해 오랫동안 기다려온 3단을 따는 순간이었다.

박 군은 7살때 처음 바둑을 접한 후 바둑의 매력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입문 첫 해 달구벌 바둑대회에 나가 어린이 부문 장려상을 탈 정도로 소질이 돋보였다. 가로, 세로 19줄이 361개 교차점을 그리는 반상(盤上)은 박 군의 놀이터였다. 아들이 바둑에 소질이 있음을 안 부모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바둑학원으로 이끌었고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2학년 때 서부교육청 주최 바둑대회에서 우승했고 서울서 열린 전국 대회에서는 어린이부 3등을 차지했다. 바둑대회가 열리는 곳이면 구미, 문경, 안동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도전했다.

실력이 저절로 쌓인 것은 아니었다. 바둑학원에 다녀온 오후에는 승착, 패착, 완착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했다. TV도 만화영화 대신 바둑채널만 봤다. 바둑잡지를 펴고 프로기사들의 수를 복기했다. 매일 2, 3시간씩 바둑 공부에 매달렸다.

신기한 일은 바둑실력이 늘면서 성적도 오른 것. "구구단도 쉽게 외웠어요. 동시도 잘 외웠던 것 같고 웬만한 덧셈 뺄셈은 암산으로 다 되더라고요." 바둑학원 이외 사교육이라고는 집에서 하는 학습지가 전부지만 수학은 4학년, 영어는 5학년 진도까지 나갔다고 했다.

"대충 반에서 3등안에는 든다."는 박 군은 공부 이외에도 학교에서 다독상을 받고 영어대회에서도 상을 탔을 정도. 박 군은 "이달 말에도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바둑대회에 출전할 것"이라며 "기회가 되면 프로기사의 길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둑에서 '열공' 힌트 얻었죠

중학생부 1위를 차지한 경진중학교 3학년 한성욱(15) 군은 우승을 한 후에도 담담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바둑협회에서 주는 4단증까지 따고 서울에서 3년간 바둑 유학까지 했던 바둑 영재였지만 실력에 한계를 느끼고 프로기사의 꿈을 접은 기억 때문이다.

"5살 때부터 바둑학원에 다니다가 프로기사의 꿈을 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갔어요. 바둑학원에 다니기 위해서였죠."

서울 생활은 바둑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학교에 양해를 얻어 오후에는 늘 바둑학원으로 향했다. 바둑연습은 거의 매일 오후 9시, 10시까지 이어졌다. 일년에 평균 5, 6개 대회에 나가 실력을 쌓았다. 하지만 곧 한계가 왔다.

"전국에서 잘한다는 아이들만 모이는 곳이어선지 자꾸 뒤처지더군요. 지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꿈을 접어야 했죠."

문제는 학업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서울에서 내려온 한 군의 성적은 반에서도 20등 중반에 그치는 수준. 그동안 교과 공부를 등한시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바둑은 알게 모르게 한 군에게 큰 도움을 줬다. 한 시간 넘게 집중해야 하는 대국 경험은 책에 집중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대국을 하면 침착하게 상대방의 수를 읽어야 하는데 이런 습관은 각 과목의 원리나 배경 지식을 이해하는데 큰 보탬이 됐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상위권 성적으로 뛰어올랐다.

"바둑과 공부의 공통점이 있다면 정직하다는 거죠.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실력이 늘지 않아요."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 바둑 배우면 머리가 좋아진다(?)

바둑은 두뇌개발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매일신문 바둑 해설을 하는 양현모 씨는 "바둑은 옛 중국의 제왕들이 자식을 훈육하던 교육도구였다."며 "두뇌개발뿐 아니라 예절, 배려 등의 인성교육에도 효과가 있다."고 했다.

▶계산능력이 좋아진다 : 상대방의 집과 내 집의 수를 눈으로 계산하다 보면 수리력이 향상된다. 몇 수 앞을 미리 생각하면서 계산과 추리 능력도 길러진다.

▶집중력이 좋아진다 : 바둑을 두면 경기에 빠져서 다른 일에 신경을 돌리지 않게 된다. 한 판에 보통 250수 정도가 진행된다고 보면 한 사람당 100번 이상 집중하게 된다.

▶침착해진다 : 매 수에 집중하다 보면 침착성도 저절로 생긴다. 급수가 낮은 아이들은 대국 중에 장난을 친다든지 옆으로 눈을 돌리지만 잘 두는 아이들은 묵묵히 자기의 바둑만 생각한다.

▶창의력과 응용력이 좋아진다 : 바둑판의 가로 세로 19줄에 생기는 변화의 수는 무한대다. 대국을 할 때마다 새로운 작전이 필요하다. 변화무쌍한 바둑을 두다 보면 사고의 폭과 깊이가 커진다.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 바둑은 뇌의 신경세포를 전체적으로 넓게 사용하게 한다. 바둑을 통한 암기력, 집중력, 수리력, 창의력은 학교 공부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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