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발작증이라는 희귀한 수면병을 앓고 있는 청년, 그는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잔다. 시골길이든 도시 한가운데이든 긴장을 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잠들어버린다. 꿈결처럼 끝없이 펼쳐진 길 위에 어린 시절의 다정한 어머니가 나타나고 이어서 강물을 거슬러 힘차게 뛰어오르는 연어 떼가 등장한다.
영화 '아이다호'(원제:My own Private Idaho) 중에서 비주얼과 음악이 가장 돋보이는 시퀀스이다. 아이다호는 독립영화감독 출신인 구스 반 산트가 초창기부터 자신의 작가주의적인 정체를 분명하게 알린 작품이며 음악 또한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다.
애디 아놀드(Eddy Arnold)가 노래한 'The cattle call'은 요들송 창법이 섞인 컨트리 음악으로 '강물 속 연어 떼' 장면에서 영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고향, 모성, 회귀본능, 삶의 근원, 시간의 영속성이라는 키워드들이 자연스럽게 음악의 선율에 실려 나오며 '아이다호'의 메시지를 함축한다.
음악과 영상의 조화가 강렬한 미적 쾌감을 주는 것은 영화에서뿐만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영화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순간과 마주칠 때가 있다. 여름 장마가 소강상태에 머물러 있던 어느 때, 거대한 먹장구름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보며 반젤리스(vangelis)의 앨범을 듣게 되었다.
그 광경은 음악과 시너지를 만들면서 마치 또 하나의 우주가 열리는 것 같은 그런 신비감을 자아내었고 지금까지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연하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풍경을 보면서 듣는 투명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도 좋고, 봄날에 숲속이나 강가를 거닐면서 듣는 스테판 그라펠리의 연주 또한 자연이 주는 기쁨을 증폭시켜준다.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노부부의 어깨 위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가 흐른다고 상상해보자. 그 모습이 더욱 숭고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정화하고 내면의 소리를 일깨워 주는 기폭제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며 가치가 아닐까.
누구나 예민한 감수성으로 일렁이던 특별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사춘기를 보내고 막연하지만 미지에 대한 동경으로 설레던 시절, 그때의 음악들을 지금 다시 들어보면 장르와 취향을 막론하고 모두 다 좋다. '그리움'과 '음악' 의 상호작용 때문일 것이다.
음악은 그래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또 하나의 좋은 명상법이 될 수도 있다. 누구든 '음악이 있는 풍경'을 자주 만나면 좋겠다.
전소연(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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