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농촌이 희망이다 2

지난번 이 난(5월 25일자 31면)을 통해 우리 농촌의 희망이 되고 있는 우수농가 49곳이 거둔 실적과 '비결'을 소개한 바 있다. 그 중 비결에 대해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품질이었다. 둘러본 49곳 농가 모두 '품질에서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으면 어떤 수를 동원해도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제1의 신조로 삼고 있었다.

최고 품질의 사과를 생산하기 위해 해발 400~450m 산중턱에 과수원을 조성한 경우도 두 농장이나 있었다. 지금도 절벽을 깎아낸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야 들어갈 수 있는 농장이니 처음 조성할 때에는 얼마나 고생했을까! 전기도 물도 없는 산중 화전에서 끊임없이 돌을 주워내고 퇴비를 뿌린 뒤 깜깜한 밤에 경운기 몰고 혼자 내려오다 급경사 산길에 죽을 뻔한 적도 있었지만 이를 감수한 것은 오로지 품질 때문이었다.

나무 한 그루당 열리는 평균 50송이 포도를 30송이로 솎아내고, 다시 그 한송이에 포도알이 70개 정도만 자라도록 알솎기까지 하려면 포도 한송이에 20번 이상 손을 대야 한다. 최상 품질의 포도를 얻기 위한 노력이다.

불량상품을 세 번 납품하면 가차 없이 조합에서 퇴출시키는 3진아웃제, 오로지 품질 우선으로 상품을 고르기 위해 제품 선별에는 꼭 외부인을 고용하는 것도 품질 지상주의 때문이다.

택배로 보낸 과일 박스에서 단 1개의 불량품 항의라도 들어오면 즉각 교환해주는 수준의 리콜제는 해주지 않는 농가를 찾기가 어렵다.

이 같은 품질 우선과 나란히 하는 것이 친환경이다. 거의 신앙 수준이다.

무농약 쌀농사를 위해 오리농법을 도입했다가 오리 사료에 항생제가 들어 있으면 어떡하나 해서 우렁이농법으로 대체했다. 재선충 항공 방제를 한다고 하면 그 약품이 우리 논으로 날아오지 않나 걱정하고, 마을 앞길을 지나는 차량 타이어에 외지에서 친 농약이 묻어 있을 수 있다며 신경 쓰는 농장이 있을 정도다.

친환경 사료 사용으로 사슴과 닭을 수백 마리 키우면서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농장도 있고, (약간 과장해서) 파리 모기 한 마리 없는 우사도 있다.

여기에 끈기와 열정으로 태어나는 신기술이 동원된다.

5년 이상을 은행나무 접붙이는 일만 해온 농민은 결국 6개 신품종을 개발할 수 있었다. 기계 제작 기술이 국내에는 없어 4년 동안 자체 개발에 매달린 팽이버섯농가에는 지금 그 기술을 배우려는 일본인, 중국인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 미나리영농법인은 미나리 향을 조절할 수 있는 재배 신기술로 미나리 1㎏당 1만 2천 원이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일본 낫도보다 효력이 뛰어난 생청국장 발효균주 개발, 전국 버섯농장에 지침으로 내려간 하우스 내 스프링클러 설치법, 앉아서 풀 깎는 승용 예초기를 비롯해 농기계 책자에 소개된 새 농기계 개발…. 농업 기술분야에서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음을 웅변한 사례들은 많다.

아이디어는 부가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1t 트럭 1대분의 생표고버섯을 130만 원이란 헐값에 팔아 억장이 무너진 한 농민은 이를 말려 추석 선물세트로 내놓으면서 5배인 600만 원을 거머쥐었다. 수삼으로만 팔던 인삼을 홍삼으로 가공해 100억 원 매출을 기록했다. 모두 아이디어의 힘이다.

이렇게 생산한 금쪽 같은 작물을 헐값에 넘기지 않으려면 유통망 확보와 제품 외적 부문에 대한 세심한 노력이 또한 있어야 한다.

한 묶음 280원에 납품한 표고버섯이 4천 원에 팔리는 현장을 목격하고 직판 루트를 강구해 1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영농법인처럼 거의 대다수가 도매시장을 통하지 않고 거래처에 바로 납품한다. 유통 과정 축소로 생산자는 더 많은 이윤을 얻고 소비자는 더 싼 가격을 누리는 것이다. 이렇게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기까지에는 품질에 대한 확신과 피나는 발품 팔기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1960년대 획기적인 증산을 이룩해 낸 우리 농업의 '신화 창조'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이상훈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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