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신혼여행 내내 주스만 봐도 실수 생각나

비행기를 처음 타던 날은 내가 결혼식을 하던 날이다.

결혼식 하루 전 들뜬 마음으로 준비물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인터폰 소리가 나 문을 열어 보니 어머니 친구분이 놀러오셨다.

부러운 듯 힐끔 쳐다보는 어머니 친구분은 "누구는 좋겠다. 비행기도 타보고, 난 언제 비행기 한번 타 볼꼬? 그나저나 비행기도 멀미하는 갑더라. 내가 멀미약 하나라도 사줘야 안 되겠나."라며 귀밑에 붙이는 멀미약을 사다 주었다.

내일 아침에 식장 가기 전 붙이고 가라는 당부 말씀을 난 소홀하게 듣고 그냥 식장으로 향했다. 식장에서 만난 어머니 친구분은 귀만 유심히 보더니 바깥으로 황급히 나갔다 들어오시며 귀밑에 멀미약을 또 사오셨다. 그리고는 직접 붙여주시고는 흐뭇해하시며 자리로 발길을 옮기셨다. 난 귀밑에 멀미약을 붙이고 식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스튜어디스 아가씨가 안전수칙을 안내하는 동안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속이 울렁거린다는 비행기 멀미는 두 번씩이나 귀밑에 멀미약을 사오신 어머니 친구분 덕분에 아무렇지 않았고 창밖 하얀 구름 사이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풍경을 구경하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20분 정도 흘렀을까? 스튜어디스 아가씨는 음료랑 커피, 사탕을 담아가지고 와 "뭘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어왔다. 처음 비행기를 타는 나는 주스를 달라고 하고 돈을 지불해야 하는 줄 알고 지갑을 꺼내들었다. 아가씨는 피식 웃으며 모든 것이 서비스라고 말했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고 처음 비행기를 탄 사실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서둘러 내리기 시작했고 웃으며 인사하는 스튜어디스를 애써 외면하며 그렇게 비행기를 떠나왔다.

즐거운 신혼여행을 하는 동안도 주스만 보면 비행기에서의 생각이 떠나질 않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당당하게 커피를 주문했고 맛있다는 미소까지 건넸다.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어딜 가는 날이면 '귀밑에'를 붙여주시던 어머니의 친구분과 주스가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양외탁(경북 구미시 공단동 남선알미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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