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한답시고 바쁜 고등학생 아들 녀석과 긴 이야기를 했다. 하다 보니 내 어린 시절을 더듬게 되었는데, 눈치를 살피며 대화의 수위를 높여 나가던 녀석이 슬슬 "아버진 '야사' 언제 처음 봤어요?…" 등등의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요녀석, 전에도 이야기해줬는데, 아버지를 또 공범으로 만들려는구나." 싶었지만, 남자대 남자로 어떤 건 돌려 말하고 어떤 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줬다. 그런데 느닷없이 "청소년에게서 보편적인 '야동'이 청소년문화로서 정당하다고 생각안하세요?" 라고 하면서 어설픈 논법을 펼치려는 게 아닌가.
"햐! 이건 아니다." 싶어, 성(性)의 왜곡과 야동의 유해성 등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으려는데 나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언성이 올라간 모양이다. 갑자기 녀석이, "아버지는 대화를 하는데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어른이라고 권위로 누르려고만 하지 마세요." 따위의 말을 하며 일어나 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도 기가 차서 쫓아가 한대 쥐어 박으려다 다시 생각해보았다. "정말 내가 화가 났던가?" 하고. 하지만 어쩌랴, 서먹하고 괘씸한 감정을 내리사랑으로 삭이고 며칠 지나서 아들과 다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무엇이 대화를 방해했을까? 그래, 녀석이 아버지를 시험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또한 정말로 야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리라 믿지 않는다. 그런데 첫째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문제인 것 같다. 아무리 이성적인 대화를 한다지만 아무래도 아버지는 교훈적이고 모범적인 이야기를 하려 하고, 아들은 어른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자신을 정당화하려 들기 쉽다.
또 청소년은 상업화된 정보와 호기심으로 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만, 어른은 성을 은근히 감춰야 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을까. 또한 녀석은 나름대로 논리적으로(소피스트적이긴 하지만) 생각을 표현할 수 있지만, 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그렇게 훈련받지도 않았으며, 또 성공적으로 성적인 문제를 극복한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아직도 부끄러움이 많아 표현과 설득력이 부족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난 수컷 냄새나는 아들이 싫은 건 아닌지. 여드름 숭숭한 녀석에게 내가 지금껏 누렸던 남자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은연중에 작용한 것 아닐까?
이런 농담을 끝으로, 부자간에는 넘지 못하는 대화의 한계가 있음을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설픈 논리로 가슴을 배반하지 말며, 앞으로 성 문제와 같은 껄끄러운 주제는 가급적 피하자."고 전격 합의했다.
조현열(아동문학가·신경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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