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스캔들만 캐내고 추적해온 '셀리로스' 기자는 '대통령의 스캔들'이란 책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미국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 가장 리더십이 약한 경우도 있었고 가장 추문이 많았던 지도자들이 국가에 최고로 잘 봉사한 경우도 있었다.'
여성과 밀회를 즐긴 윌슨 대통령이나 백악관에 情婦(정부)를 둔 루스벨트 대통령, 사생아 논란을 낳은 하딩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 케네디, 아이젠하워 등 역대 대통령들의 크고 작은 사생활 스캔들을 밝혀내면서 얻어낸 평가였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청문회를 보고나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올 대선 때 뽑자는 사람이 孔子(공자)님이나 잔다르크 같은 聖人聖女(성인성녀)냐는 의문이다. 시집도 안 간 처녀 후보에게 '특정 기업인과 약혼설이 있었는데…'라고 물은 것이라든지 '에리카김이란 미모의 유부녀와 무슨 관계라도 있느냐' 따위의 질문 같은 것이었다.
소위 도덕성이란 걸 들춰볼 요량이었던가본데 청문위원들의 정치적 감각이 퇴근길 소주방의 입방아 뉴스에도 못 미친 '소문 내보기' 내지는 난센스 퀴즈게임 수준이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처녀몸인 후보 당사자 스스로 '아이가 있다는데 데려오면 DNA 검사도 해주겠다'라고 했을까.
정치인 특히 대통령 뽑기에서 요구되는 도덕성은 크게 세 가지들을 말한다. 금전적 부패, 거짓말, 그리고 굳이 한 가지 더 보탠다면 異性(이성) 문제다. 그러나 그 세 가지도 과거의 과오를 캐내고 확인하는 쪽보다 앞으로 또는 집권 후에도 되풀이할 가능성과 지금은 깨끗해도 부도덕해질 수 있는 개연성을 짚어보는 목적과 기준에서 따져야 한다.
과거 우리가 뽑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세 가지 도덕성에서 모두 '적합' 판정을 받은 위대한 지도자가 몇이나 있었나. 여성 문제만 봐도 미국의 대통령들 못잖다. 두 명의 전 대통령은 사생아를 낳았다는 소문이 임기 내내 따라다녔다.
소문은 명백히 드러나기 전에는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다. 과거의 떠도는 소문으로 미래 통치자의 도덕성을 갈라치고 국정 능력을 豫斷(예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제대로 된 정치 청문회라면 적어도 떠도는 소문의 꼬리 정도는 잡아채 속을 끄집어내 보일 만한 근거와 능력을 갖고 거론해야 한다. 처녀가 약혼을 했던 안했던 그게 국정 능력 판단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한나라당은 그런 '소문 내기'수준의 청문회보다는 누가 당을 흔들고 후보를 상처 내는 검증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부추겼는지를 검증해 봐야 했다. 밖에서 볼 때는 보이지 않는 숨은 손이 있었다는 의구심도 있다.
생각해 보라. '한 방에 보낼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여권이 정말 그 한방의 秘拳(비권)을 청문회 초반 게임 때 미리 내놓거나 던져줄 만큼 우둔할 리가 없다. 제대로 된 보이지 않는 감독 연출가가 있다면 옛날에 다 날아다녔던 소문에 한두 가지 가벼운 소문들만 더 모아다 던져준 뒤 서로 물고 뜯느라 진이 빠져 지칠 무렵 대선 직전에 숨겨둔 결정적 강펀치를 날릴 것이다. 결정적 도덕성 폭로 무기가 있으면 있을수록 더 오래 더 깊이 숨겨두고 때를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초본 유출, 국정원 보고서 등등 야당 재주로는 거의 절대 새나올 수 없는 소문 조각들이 야당 쪽으로 흘러들어간 것이 우연일까. 의도적으로 던져줬을지 모르는 소문 조각들을 웬 떡인 양 받아다 청문회장에 물고 들어와 싸웠던 이번 청문회가 바로 그런 '비권論(론)'을 의심케 하고 있는 증후다. 그들이 결정적 약점을 갖고 있다면 청문회를 열심히 열어봤자 숨겨둘게 뻔하고 반대로 결정적 약점 쥔 게 없다면 청문회 안 열어도 본선에 가서 이번 소문 수준의 검증 거리밖에 더 나올 게 없다.
이래저래 한나라당 청문회는 고작 허리 아래 소문이나 들추려다 끝난 하나마나 청문회가 된 셈이다. 이제 전국을 돌며 치를 경선 축제 때는 검증 얘길랑 덮고 과거를 묻는 대신 미래를 물어라.
金 廷 吉 명예주필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