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세 아이 키우며 간암 투병중인 김순자씨

남편과 이혼하고 세 아이를 힘겹게 키우고 있는 김순자 씨는 간암으로 투병 중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남편과 이혼하고 세 아이를 힘겹게 키우고 있는 김순자 씨는 간암으로 투병 중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코끝을 매섭게 할퀴는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던 4년 전 겨울이었지요. 그때 두 살배기였던 막내를 들쳐업고, 첫째와 둘째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도망치듯 집을 나섰습니다. 한쪽에는 슬리퍼를, 다른 쪽에는 구겨진 운동화를 신고 뛰쳐나왔지요. 남편에게 빌려 준 빚을 받겠다며 사채업자들이 집으로 몰려 와 경황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마땅히 갈 곳도, 오돌오돌 떨고 있는 아이들의 차가운 몸을 녹여 줄 한 푼 돈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몸을 제대로 한번 뉘이지 못한채 하루를 견디듯 그 해 겨울을 버텨냈습니다. 공원과 쉼터를 전전하며 어두운 밤거리를 방황해야만 했지요.

저는 나이 마흔의 여자입니다. 간암 1기로 병원에 누워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민지(가명·11·여), 민정(가명·9·여), 종민(가명·6)이 엄마지만 경북 칠곡의 한 교회에 아이들을 맡기고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꾸만 자꾸만 눈에 밟혀 쉬이 잠을 청할 수가 없네요.

민지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남편과 헤어졌습니다. 골프 사업을 했던 남편은 경영이 어려워지자 여기저기서 사채를 끌어다 쓰기 시작했고 사채이자는 무섭게 우리 가족을 옥죄어 왔지요. 사채업자와 빚쟁이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어린 우리 아이들 앞에서 갖은 욕설과 폭언을 섞어 무섭게 행동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기에 아이들에게 큰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불행은 그 뒤로 또다른 불행을 낳았습니다. 빚을 갚느라 들어놓았던 보험을 해약한 뒤, 다시 보험에 가입하려고 건강검진을 했더니 간염 보균자로 보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을 들쳐업고 식당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간염이 간경화로 악화됐고 지난해에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데···. 지난달 왼쪽 다리를 옮겨 디디기조차 힘들어 병원을 찾았더니 그 암세포들이 엉덩뼈와 폐로 전이됐다고 하더군요.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아빠 없는 아이라는 얘기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재활용품 수거함을 뒤져 찾은 옷을 입힐 정도로 돈을 아껴 저축을 했습니다. 매일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부모 없는 고통을 알기에. 고등학교 때 어머니를 위암으로 잃고, 시집도 가기 전에 뇌출혈로 아버지를 잃었기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저와 똑같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주위를 둘러싼 모든 조건이 불리할지라도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있어야 하기에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제 생명줄을 쉬이 놓칠 순 없습니다. 의학적으로 아무리 불가능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제가 지켜야 할 어린 생명이 있기에 저는 살 겁니다. 사람 앞일은 단 한 치도 알 수 없으니까요.

20일 대구의 한 병원에서 만난 김순자(가명·40·여) 씨는 CT 촬영을 마치고 입원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주사 바늘이 파고 든 멍자국으로 김 씨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김 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엄마를 살려달라고 나란히 앉아 기도를 하는데 부모로서 참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살 겁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니까요."라며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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