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천도교보다 한 민족을 위해 더 많은 피를 흘린 종교가 또 있을까? 불과 147년 역사밖에 되지 않는 민족종교 천도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더 붉은 선혈을 역사의 수레바퀴에 뿌렸다. 경북 영해지방에서 크게 일어났던 교조 최제우 신원운동, 전라도내 54개 시군이 빠짐없이 동참한 동학혁명, 갑진개화운동(1904년), 3·1운동 그리고 해방을 위한 독립투쟁을 하면서 천도교인들은 목숨을 초개처럼 버렸다.
구한말 동학혁명에 뛰어든 30여만 명을 대상으로 정부에서 명예회복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동학은 1905년 의암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명된 이후 3·1독립운동, 6·10만세사건, 비밀결사 오심당운동, 무인멸왜기도운동을 거치면서 수많은 생명과 재산 그리고 혈육을 아낌없이 던져버렸다. 인간의 존엄성, 인권 쟁취를 위한 거룩한 희생이었다. 그러나 천도교는 민주와 평등을 위하여 워낙 피를 많이 흘린데다가 해방 이후 교세까지 위축되어서 교단 내부적으로 대규모 성지개발과 보존도 어렵다. 지역사회가 잊어버린 대표적인 천도교 성지가 바로 대구이다. 대구는 동학의 창시자이자 천도교 제1대 교조인 수운 최제우가 효수형을 당한 순교지이다. 하지만 대구 달성공원 수운 동상과 종로초등학교 최제우 나무를 제외하면 이를 기념하는 공간이나 행사는 어느 곳에도 없다.
◈ 달성공원 수운상, 종로초교 최제우 나무
대구에서 최제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딱 두 곳이다. 한 곳은 대구 달성공원이고, 다른 한곳은 대구 종로초등학교이다. 종로초등학교에 최제우 나무가 있게 된 것은 경상감영공원을 포함한 이 일대가 옛 경상감영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종로초등학교에 있는 최제우 나무는 400년 묵은 콩과 회화나무이다. 이 회화나무는 경상감영 옥터에 갇혀 있던 최제우가 겪은 모든 것들을 지켜보았으리라는 판단에서 최제우 나무로 명명되었다.
또 하나 대구에서 최제우 관련 유적이 있는 곳은 대구 달성공원이다. 달성공원 입구에서 오른쪽 동물원 앞으로 올라가 관풍루 앞쪽에 지난 1964년 수운 최제우 참형 100주년을 기려 세워진 동상이 서 있다. 수운은 '그른 도'(左道)로 바른 길(正)을 어지럽힌다는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대구 장대(현 대구 동아쇼핑 일대, 옛 경상감영 처형장)에서 효수형을 당하였다. 최제우 동상이 세워진 것은 순교 100년이 지난, 김인 경북지사 시절이었다. 당시 김 지사는 "100년 전 경상감사 서헌순은 수운 최제우를 대구에서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참수, 길거리에 내걸었는데 오늘 나는 수운을 기리는 동상을 세우고 있다."고 말하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큰 틀을 만들어가려는 동학의 참뜻이 뒤늦게나마, 수운 동상 건립을 통해 표출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수운이 순교한 대구에, 원하든 원치 않든 수운 기념관이나 홍보관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아쉬운 대로 순교지 표석부터 세워야 하지 않을까?
◈ 대구에 수운 참형기념관 만들자
그러나 수운을 기념하려는 대구의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구시립중앙도서관 노인독서대학의 회원이던 고 김석찬 씨는 이북 피란민이다. 거의 최제우 마니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던 그는 생전 노인대학 핵심회원 열댓 명과 함께 수운을 기념하는 모임을 만들고, 매일 대구 달성공원 관풍루 앞에 서 있는 수운 최제우 동상을 찾아서 참배하고, 깨끗하게 청소도 했다. 종교는 달랐지만, 늘 수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청소로 표현하고, 참배로 보답하였다. 그러면서 "수운 최제우 참형기념관을 지어야 한다."고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한 사람 살갑게 그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김 노인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유지도 흐지부지되어버렸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학문의 수도를 지향하는 대구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인간의 근본을 가르치고, 사람은 본래 귀한 존재임을 가르치는 동학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다. 사람마다 사물마다 한울님을 모셨다니 다같이 평등하고, 오전 5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매일 오후 9시에 청수를 떠놓고 기도를 올리며 열심히 작복(作福)한다. 하지 않고 얻고자 하는 기복과는 분명히 다른 기도생활이 눈에 띈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나 마칠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반드시 내 안에 모신 한울님께 고하는 '심고'(心告)를 잊지 않는다. 인사도 "(한울님을) 모시고 안녕하셨습니까?"이다. 내 안에, 당신 안에 한울님이 있는 것을 늘 깨닫고 있는데 함부로 대할 수 없다.
◈함월산 여시바윗골 수운초당
길없는 길을 찾느라 가사를 돌보지 못한 십여 년을 주유팔로한 최제우는 세상을 제도할 가르침도 얻지 못하고, 거의 알거지가 되어 처가가 있는 경남 울산 유곡동 여시바윗골로 찾아들었다. 달을 품었다는 함월산 여시바윗골에 스며든 게 31세 되던 1854년 가을이었다. 이듬해 봄, 두 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기도를 드리던 수운을 한 이인(異人)이 찾아왔다. 금강산 유점사에서 백일기도를 마치고 왔다는 그 이인은 "기도를 마치던 날, 탑 앞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는데 그 책 내용을 아무도 아는 이가 없어 물어물어 찾아왔다."는 얘기를 하면서 "사흘 안에 내용을 알아달라."고 말하고 갔다. 사흘 뒤, 다시 찾아온 이인에게 "책 내용을 알 것 같다."고 수운이 말하자, 이인은 "아는 자만이 그 책을 가질 수 있다. 부디 책의 내용대로 기도하라."고 당부하며 돌아섰다.
수운이 따라나서며 배웅을 하려는데, 어느 순간 그 이인이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바로 천도교에서 얘기하는 수운 최제우의 '을묘천서'(乙卯天書) 사건이다. 물론 지금 을묘천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울산은 을묘천서 비화가 서린 여시바윗골을 성역화해 놓았다.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당시 이 지역에 있던 초당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으로 수운 초당을 재현해두었다. 예닐곱 평 되는 초당과 기도실, 유허비로 구성된 여시바윗골에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함월고등학교를 지나자마자 우회전해서 들어가는 길은 잘 포장되어 있고, 왼쪽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수운 초당의 여름을 꽃댕강나무가 지키고 있다. 가는 길목마다 수운 최제우 유적지 안내 입간판이 초행길 길손들의 친구가 되어준다. 대구와 큰 대조를 이룬다.
◈ 한창 진행중인 동학 명예회복절차
을묘천서에는 기도하라는 가르침이 있었다. 이 가르침에 따라 수운은 양산 천성산(요즘은 원효산이라고 함, 천 명의 인물이 난다고 알려져 있음) 내원암(요즘 내원사) 적멸굴 등에서 기도를 하면서 깨달았다. 도를 밖에서 구하지 말고, 내 자신 안에서 구하자. 구도의 방법을 전환한 수운은 1859년 고향인 경주로 돌아와 아버지가 글공부를 하시던 용담서사에 틀어박혔다. 불출산외. 깨닫지 못하면 결코 산 밖으로 내려가지 않으리.
그러던 중 수운은 1860년 4월 5일 오심즉여심이라는 한울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우리사회에 민주와 평등의 피를 뿌렸던 동학은 지금 명예회복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물론 보상은 없다. 동학혁명에서 죽은 자만 30만 명. 과거에는 동학의 후예인 것이 큰 흉이었지만 이제는 동학의 후예라는 것이 자랑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동학혁명 참여자로 인정받게 될 절대다수자는 천도교인으로 밝혀지고 있다. 천도교가 새로운 시운을 맞은 것이다. 전라도 54개 시군은 저마다 동학유적지 만들기에 혈안이다. 세상이 동학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데, 유독 동학을 창시했고, 동학을 전파하기 위해 칼노래와 칼춤(劍訣)을 추었던 최제우의 순교지 대구는 조용하다.
지금 천도교는 수운이 추었던 칼춤을 생활스포츠에 활용하도록 한 '용담검무'를 만들어내었다. 시일(侍日: 매주 일요일에 함께 모여 한울님을 모시고 기도하는 날)이던 지난 22일 항일독립운동가 인암 박진표가 창설한 부산시교구에서 열린 용담검무 시범사업은 천도교의 또 다른 비상을 보여주고 있다. 동학의 명예회복이 진행되고 있고, 수운이 오만년래 좋은 때를 만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목칼을 들고 춤추던 검무는 이제 대중적인 생활스포츠로 우리곁에 다가오고 있다. 이럴 때 인간과 자연, 사람과 세상,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울려 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가 1864년 대구 장대에서 순교한 최제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성지개발, 아무리 서둘러도 빠르지 않다.
최미화기자 magohalmi@msnet.co.kr
사진·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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