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는 동양과 인연이 깊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선교사로 인도에서 활동했고 어머니는 인도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싯다르타' 등 많은 그의 작품에도 인도와 중국의 정신이 녹아 있다. 헤세는 1911년 아시아를 여행한 후 기행기'인도에서(Aus Indien)'까지 출판했지만 당시 인도 땅을 직접 밟지는 못했다. 실론섬과 네덜란드령 동인도라고 불렸던 인도네시아, 말레이반도, 중국 등을 보고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헤세는 유럽의 식민통치로 유린되고 착취당한 동남아의 모습을 직접 보고 유럽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헤세는 생전 "인도인과 중국인은 내가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존경하는 유색민족"이라고 털어놓았다. 영혼적이고 경건한 인도 정신과 실제적인 삶과 국가, 가정생활을 추구한 중국 정신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어제 퇴임한 압둘 칼람 제12대 인도 대통령은 바로 이런 인도 정신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5년간의 임기를 마친 후 그는 "나는 가방 2개만 들고 떠납니다. 하지만 인도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모습은 꼭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미사일 과학자 출신으로 인도를 과학기술 강국으로 이끈 칼람은 인도인들에게 원대한 꿈을 심어준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도인들은 의전적 역할만 수행한 대통령과 행정 권한을 가진 총리 중 누구룰 진정한 지도자로 생각하고 존경할까. 그는 남긴 숱한 일화는 인도인들의 판단에 단서를 제공한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마음속에 있는 신성한 빛이 사라진다'는 힌두교의 가르침대로 살았고, 최고급 빌라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살던 단칸방의 집을 선택한 청렴한 금욕주의자인 칼람은 오늘날 한국인이 좀체 갖기 힘든 지도자상임에 틀림없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아시아·아프리카에 대한 '약탈'은 20세기 초 절정을 이뤘다. 약탈은 서구 제국의 부와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수단이었다. 결코 정당화될 수 없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런 약탈을 극복하려는 새 기운이 태동하면서 지난 반세기동안 제3세계는 눈을 떴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제3세계의 약진을 대변하는 용어가 바로 브릭스(BRICs)다. 인도와 중국의 빠른 성장은 제3세계 발전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러나 11억 인도인의 구심점이었던 칼람이 보고 싶어한 선진국 인도는 단지 기술이 고도화된 윤택한 조국만은 아닐 것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약탈당한 인도를 일으켜 세워 헤세가 존경한 인도 정신이 살아있는 인도일지도 모른다. 그가 던진 '지도자는 어떤 가치와 국가관을 가져야 하느냐'는 화두는 지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의 꿈을 선진에의 열망과 인도 정신의 회복으로 정리한다면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들은 어떤 꿈을 갖고 뛰고 있을까. 이태리 사회학자 프란체스코 알베로니는 '명령의 기술'에서 결단력, 두려움에 맞서는 능력, 도전과 응전 등을 뛰어난 지도자의 조건이라고 보았다. 대통령 후보들의 지도자로서의 이런 자질과 도덕성은 반드시 걸러봐야할 중요한 부분이지만 꿈에 대한 검증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집단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국가의 흥망은 지도자의 꿈과 리더십, 민중의 에너지에 좌우됐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도자와 민중이 다른 꿈을 가지면서 짝을 이루지 못해 역사의 바퀴가 멈춰선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았다. 지도자의 꿈이 민중에 부합하지 못해 국가의 위기를 부르는 것이다. 반대로 양자의 강한 결속은 무서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지도자와 민중이 늘 하나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 지도자가 가진 꿈을 민중이 명확하기 이해하지 못하거나 지도자가 민중의 꿈을 모르면 낭패다. 세계화 추세에서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전한 현대에도 국가라는 형식이 유효하다면, 국가가 개인의 성장에 필요한 토양이라고 인정한다면 지도자의 꿈과 자질은 반드시 짚어봐야할 덕목이다. 조만간 대통령을 새로 뽑아야 하는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반드시 이 점을 물어야 한다. '당신은 어떤 꿈을 갖고 있는가''대한민국을 위해 뭘 할 수 있느냐'고.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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