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의 성문화

'현모양처와 양귀비'. 이 두 가지는 한국사회가 원하는 아내상이다. 광장에서는 현모양처로, 밀실에서는 양귀비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남편에 대한 평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밖에서는 성인(聖人)처럼, 집에서는 변강쇠가 되기를 원한다. 공적인 자리에서 나이 지긋한 신사들이나 정치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여성 배우를 꼽으라고 하면, 으레 펑퍼짐하고 나이든 여자의 이름을 말하기 일쑤다. 실제로 그들의 이상형이 '펑퍼짐한 여성'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믿어지지는 않는다.

△ 선정성에 대한 이중적 평가

우리나라 사회의 성윤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금조치를 당하거나 곤욕을 치른 책들이 있다.

1960년대의 방영웅의 '분례기', 1970년대 염재만의 '반노' 1980년대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이 음란성을 이유로 필화사건을 겪었다. 1950년대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일찌감치 퇴폐논쟁을 일으켰고, 남정현의 '분지' 역시 야한 장면으로 논란이 됐다. 가장 최근에 선정성이 문제가 된 작품은 문화일보 연재소설인 이원호의 '강안남자'였다. 청와대는 '강안남자'의 음란성을 이유로 문화일보에 대한 구독을 중단했다. 57부였다.

국내작품 뿐만 아니라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아폴르네에르의 '돈쥬앙', 사드 백작의 '소돔 120일' 등도 판금 됐던 적이 있었다.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역시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1992년 '즐거운 사라'로 구속됐던 마광수 교수는 2007년 초 자신의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 등 성행위를 묘사한 글과 그림을 올린 혐의로 다시 약식 기소됐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성에 대한 평가'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약식기소를 선택한 것을 보면 10년 전과 현재 음란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평가도 있다.

마 교수는 1992년 12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고 1994년 7월 항소에 이어 1995년 6월 상고도 기각되면서 '즐거운 사라'는 예술이 아닌 외설로 확정됐다. '즐거운 사라'는 모두 폐기처분됐고 헌책방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즐거운 사라' 이후 마 교수는 10년 동안 개인적으로 큰 고초를 겪기도 했다.

마 교수는 '즐거운 사라'로 사회적 왕따가 됐지만 당시 연세대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마광수 교수의 강의실에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그의 강의는 신선했다."고 평가한다. 헌책방에는 요즘도 심심지 않게 '즐거운 사라'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문화일보의 '강안남자'는 청와대 여직원들의 수치심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구독중단조치를 당했지만, 샐러리맨들 사이에서는 '강안남자'가 있기 때문에 문화일보를 본다는 독자들도 많았다. 장정일의 작품을 '쓰레기'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장정일의 작품이라면 무엇이든 구입하는 독자들도 넘친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퇴폐논쟁을 불러왔지만 그의 작품 중에 그만큼 많이 알려진 작품도 드물다.

우리나라 최초의 에로화가로 평가받고 있는 신윤복은 선정적인 그림 탓에 근무하던 도화서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정적 그림 때문에 도화서에서 쫓겨난 것인지, 도화서 쫓겨난 이후 선정적 그림을 더욱 많이 그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한편 신윤복은 가장 솔직하고 뛰어난 풍속화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은 틀림없이 사회의 중요한 부분인 만큼 점잖은 산수화나 초상화만을 고집했더라면, 오히려 '왜곡'이라는 것이다.

잘 팔리는 책은 대부분 일정 수준의 음란성을 갖고 있다. 순수문학을 아끼는 독자들 역시 음란성이 배제된 작품을 기꺼워하지 않는다. 그 음란성이 사회적 지탄의 정도에 이르지 않는 한, 문학이라는 포장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즐거운 셈이다. 한 달 평균 소설책 2,3권을 읽는다는 최광호(42'대구시 서구)씨는 "문학성 있는 책을 선호하지만 그 안에 음란한 재미가 없으면 손이 가지 않는다. 소설 아리랑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질펀한 이야기 덕분"이라고 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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